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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산행, 북한산 백운대(836m)

by 이흥재

2025년 1월1일(수) 대체로 흐림


오늘이 을사년(乙巳年) 새해 첫날이다. 사람들마다 새해를 맞는 기분이나 의미가 다르겠지만, 몇 년전부터 새해 첫날 북한산 백운대(北漢山 白雲臺)에 오르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 거의 매주 가는 산행의 출발을 서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북한산에서 시작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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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에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 어제 사다 놓은 햄버거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개롱역으로 나갔는데, 방금 차가 떠났는지 다음 차까지 10분 이상 남아있었다.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 지나 오금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구파발역으로 갔다.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가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 북한산성입구로 가는 704번 버스가 정류장에 막 도착하고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고맙게도 운전기사가 잠시 기다려줬다. 게다가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맨 앞자리도 비어있다. 얼른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몇 정류장 지나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휴일이라 그런지 북한산을 향하는 사람들이 꽤 됐다. 하긴 두 가지가 겹쳐 있으니 더 그랬는지 모른다. 500m쯤 걸어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지나고, 다시 100m쯤 더 걸어 계곡길과 포장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대서문(大西門)을 경유하는 포장길을 택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계곡길이 400m쯤 더 짧았지만(포장길과 계곡길이 다시 만나는 지점에서 탐방지원센터까지 계곡길은 1.6km, 포장길은 2km),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는 계곡길로 갈 예정이기 때문에 아쉬울 건 없었다.


갈림길에서 900m쯤 걸어 대서문일 지났다. 문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북한산성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과거 성내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다. 지금 문루(門樓)는 1958년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됐다. 대서문을 통과해 중성문(中城門)을 거쳐 대남문(大南門)에 이르는 길은 북한산성 주요 간선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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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1700년대 지어질 때는 6개 성문, 8개 암문, 2개 수문으로 구성돼있었지만, 지금은 6개 성문(대서문•북문•대동문•대성문• 대남문•중성문)과 7개 암문이 남아있다. 그중 원효봉(510.2m) 인근에 위치한 북문(北門)에는 문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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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승(石長丞)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지나고, 8시25분, 무량사(無量寺)에 이르렀다. 절 앞에 있는 설명문을 보니, “고종 후궁인 순빈엄씨(淳嬪嚴氏)가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 (石造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山神幀畵)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영친왕(英親王•이은[李垠] 1897~1970)을 나았다. 이후 이 절은 순빈의 원당 (願堂)이 됐으며, 경기도 전통사찰 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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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에서 5분쯤 더 걸어 넓은 공터가 있는 ‘북한산역사관’ 자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역사관은 없어지고 지금 그 건물은 북한산국립공원 자원활동가 센터로 쓰이고 있다.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곳이긴 하겠지만, 언제는 문은 굳게 닫혀있다.


2016년 지어진 새마을교를 건너 다시 갈림길에 섰다. 이정표를 보니 대동사(大東寺)를 지나는 가파른 길로 가면 정상인 백운대까지 2.6km, 와 중성문과 중흥사(重興寺)를 지나는 완만한 길로 가면 4.1km다. 1.5km를 더 걸어야 하지만, 가파른 길로 내려오기로 하고 좀더 볼거리가 많은 완만한 길을 택해 오른쪽으로 향한다.


조금 가다 보니 홀로 서있는 미륵불 옆에 소나무가 중간에서 끊겨 쓰러져 있다. 그런데 올라가다 보니 이뿐이 아니다. 유독 소나무만 뽑히거나 잘라진 게 아주 많다. 물론, 자연재해인 것 같다. 소낙성 집중호우에 대한 주의 안내문을 설치해놓은 걸 보니, 언젠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 시 피해 본 나무들인가 본데, 왜 소나무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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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47분, 중성문을 지난다. 암문을 포함한 북한산성의 다른 분들은 전부 산성을 따라 배치된 데 반해 이 중성문은 산성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문 옆에 설치해놓은 설명문을 보니,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으로, 대서문에서 여기까지 공격에 취약해 중성을 쌓았다. 문루는 1998년 복원했다.” 바로 옆 계속에 수문(水門)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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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암문으로 향하는 길과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산영루(山映樓)에 이른다.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해서 ‘산영루’라 했다 한다. 김정희•이익 등 당대 여러 문인들이 빼어난 경관을 기록에 많이 남겼다. 1925년 을축년(乙丑年) 홍수 때 유실됐던 것을 2014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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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7분, 중흥사지(重興寺址)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엔 중흥사란 절이 지어져 있다. 절 앞에는 돌에 ‘기념물 제136호 북한산 중흥사지’라고 쓰여 있는데, 그러면 문화재를 훼손한 건가? 그 터에 새로운 절을 지었으면 이제 ‘기념물’은 철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없어진 기념물을 어떻게 관리하지? 아무튼, 계속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산길로 이어지는 조그만 다리는 양쪽을 막아놔서 다닐 수 없도록 해놨다. 구체적인 설명문이 없어 그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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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를 지나면 곧바로 대남문으로 향하는 길과의 갈림길이 나온다. 당연히 백운대를 향하는 왼쪽길로 올라간다. 이정표에는 2.4km라고 돼있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여기가 ‘완만한 길’이라고는 했지만, 땀 흘리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용암사지(龍巖寺址)를 지나 북한산 대피소에 들어가 잠시 쉰다. 용암사는 승영사찰(僧營寺刹) 가운데 하나로,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그리고 대피소 옆에 석탑부재 일부만 남아있다.


9시37분, 용암문(龍岩門)을 지난다. 이정표는 보니 백운대까지 1.65km 남았다. 용암문은 산성 축성 때인 1711년(숙종37) 지어졌으며, 용암봉 아래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른다. 상부 여장(女牆)은 1996년 복원했다.


다시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과 돌길을 올라 노적봉(露積) 옆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간다. 노적(또는 낟가리)는 볏단을 쌓아놓은 모습을 말하는데, 노적봉이 그런 모양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그런 느낌을 받고 그런 이름을 붙였을 텐데, 이름이 아무려면 어떠랴. 다른 산들과 구분 짓기 위해 어떤 이름이라고 있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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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데크 계단을 올라가니 왼쪽으로 멀리 백운대 정상이 보인다. 꼭대기에 태극기가 힘차게 바람에 나부끼고, 그 주위에 여러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가파른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잠시 후 내가 올라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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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아래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고, 암문을 지나 왼쪽으로 백운대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숨은 점점 가파온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목표지점(頂上)을 향해 계속 올라간다.


다시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바위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새로운 시설물이 생겼다. 우측통행 할 수 있도록 가드레일을 추가로 설치한 것이다. 전에는 한곳에서 오르내리느라고 기다리는 일이 많았는데, 오늘처럼 등산객이 많을 때는 더 번거로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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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이 보인다. 물어보니 아이젠이 필요한 구간이 있단다. 눈이 많이 쌓여있나? 아이젠을 가져오긴 했지만, 일단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젠을 착용했어야 했나? 마지막 경사로가 너무 미끄러워 다리에 힘을 많이 줬더니 경사를 다 오르고 나서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이렇게 심하게 쥐가 난 적이 없었다. 만져보니 딱딱한 근육이 그대로 느껴진다. 잠시 앉아있으니 조금 나아졌는데, 지나던 사람이 도와준답시고 종아리를 만지려니 또 다시 악화됐다. 엄청 아프다. 이번엔 종아리 말고 발을 잡고 밀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진정됐다. 그 사이 커피도 한잔 마시고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눈이 쌓인 건 아닌데, 바위가 온통 얼어있다. 오늘은 그리 추운 날도 아니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몇몇을 제외하곤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이 별로 없다. 종아리에 약간의 통증은 느껴지지만 10시 반쯤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다른 때도 이 정도를 있었지만, 그땐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곧바로 내려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이것이라도 기념해야지. 차례를 기다렸다가 주위 사람한테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태극기와 정상석이 함께 나오도록 찍어줬다. 여태껏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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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바로 아래 넓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샌드위치를 갖고 가긴 했지만 먹기 어려울 것 같아 초코파이 한 개와 커피만 마셨다. 아직도 종아리가 완전히 나아지지 않아 내려가면서 또다시 재발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하산을 시작했다.


다시 백운봉암문을 지나고, 대동사를 지나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까지 내려오는 동안 다리를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찻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는데, 구파발역으로 가는 704번 버스가 보인다. 또 뜀박질. 무사히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탄 다음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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