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17일(금) 맑음
오늘 산행지는 관악산이다. 우리집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사당역에서 올라갈 수도 있고, 과천으로 가서 출발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지난번처럼 관악산역에서 출발한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난이도는 엇비슷하지만, 최근 몇 차례 오르다 보니 오늘 코스가 익숙한 것 같아서다.
5시30분 알람에 맞춰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이른 아침인데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데, 개롱역에서 관악산역까지 가려면 3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꽤 번거롭다. 우선 한 정거장 간 後 오금역에서 3호선으로 바꿔 타고 교대에서 2호선, 다시 신림역에서 한번 더 갈아타야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관악산역까지 갈 수 있다.
관악산역은 출입구가 한곳 뿐이라 1번 출구로 나가니 바로 관악산 일주문이 보인다. 그런데, 7시30분이 지났는데도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문 옆에 설치해놓은 머릿돌을 보니 이 일주문은 1996년 처음 설치됐고, 20년 후인 2016년 다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15분쯤 걸어 도착한 ‘관악산 야외식물원’ 입구엔 아직도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이란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비가 그대로 있다. 시비 한 귀퉁이에는 “친일작가의 작품이라 이전을 계획 중”이란 안내문도 그대로 붙어있다. 글쎄, 36년간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한 것뿐인데, 80년이나 지난 후세 사람들이 그걸 그 당시 생활을 어찌 알고 ‘친일파’ 운운하며 평가하려 드는지 한심할 뿐이다. 소위 친일행위는 그리 간단치 않아 당시 <반민족행위처벌법>까지 제정해 처벌하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벌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란 민간단체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이 대단한 연구성과인양 선전하고 있지만, 자기들 입맛대로 주관적으로 만든 성과물이기 때문에 객관성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하겠다.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친공(親共)은 제쳐두고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는 친일(親日)을 두고 왈가왈부만 하고 있는 게,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나?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대포장 된 인물로, 많은 좌파인사들이 추앙하는 김구(金九)가 그렇게 유명세를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저서로 알려진 <백범일지(白凡逸志)>일 텐데, 그 책은 저들이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는 이광수(李光洙 1892~1950)가 윤문(潤文, 사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해서 쓴 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그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소원>은 이광수의 창작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니, 그렇게 싫어하는 친일파가 그렇게 존경하는 사람의 책을 윤문해 놓았는데, 누구를 존경하고 누구를 싫어해야 하나?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각설, 식물원 끝에 있는 자하정(紫霞亭)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은 바닥이 좀 거칠 뿐이지 평탄해서 걷는데 무리는 없다. 조금 가다 보니, ‘강감찬 전설’이란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무튼, 그 글 끝에는 탄생지를 기념해 봉천동에 사당(安國祠)을 지었고, 낙성대공원을 조성했다고 돼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니 산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그리고 지난번 북한산을 오를 때 봤던, 바람에 부러진 소나무들이 자주 보인다. 다른 나무들도 쓰러진 게 더러 있지만, 유독 소나무가 많이 쓰러져 있다.
처음 만나는 이정표에 오늘 목적지인 연주대(戀主臺)까지 2.02km라고 돼있다. 출발지인 관악산역까지는 2.78km. 그러니까 오늘 산행거리는 4.8km인 셈이다. 어, 그런데 그게 아니다. 좀더 가다 만난 이정표엔 다시 연주대까지 2.22km, 관악산역까지 2.98km다. 합해보니 5.2km. 그 사이 400m가 늘어났다. 모양을 보니 같은 곳에서 설치한 이정표 같은데! 하긴 산에서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눈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미끄럽진 않다. 겨울에는 항상 아이젠을 갖고 다니지만, 언제 착용할지 항상 망설여진다. 지금도 그렇다. 착용하고 벗는 것도 번거롭지만, 착용했을 때 꽉 쪼여서 발도 조금 아프기 때문에 최대한 참아보려 한다.
날씨가 좀 풀린 것 같긴 한데, 산속이라 그런지 계곡엔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고 산에는 물론 길에도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언제 내린 눈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최근에 내렸을 텐데.
연주대를 800m 남겨둔 지점부터 산길 경사가 심한데다 눈이 쌓여있으니 꽤 미끄럽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냥 버텨보자.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데, 그들은 당연히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많이 줘서 더 피곤할 수 있다. 그리고 이내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온 것 같은데, 연주대까지 5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힘겹게 올라왔는데, 겨우 300m 올라온 셈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빠른 걸음이다.
9시14분, 산행을 출발한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관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이 연주대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다. 정상에는 그저 ‘冠岳山’이라고만 큰 바위에 세로로 새겨져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오랜만에 정상석 옆에 서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아무튼, 정상에는 연주대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연주대는 해발 629m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 있는 대(臺)다. 의상대사가 관악사 (冠岳寺)를 창건하고 연주봉에 암자를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했다가 지금은 연주대로 불린다. 연주대 축대 위에 응진전(應眞殿)이란 법당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응진전이 세워진 자리를 의상대라고 하나 보다. 이참에 응진전에도 내려가봤다. 매우 옹색한 자리에 지어놓았지만, 주위에 설치해놓은 빨간 연등이 화려하다. 응진전은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 제자인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아라한은 공양 받을 자격(應供) 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應眞)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 중시조(中始祖)이신 효령대군을 모신 효령각(孝寧閣)에 잠시 들렀다가 연주암 툇마루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오늘따라 하늘이 매우 파랗다. 최근 들어 오랜만에 마주하는 맑은 날인 것 같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연주암(戀主菴)인데, 대웅전을 비롯한 여느 사찰에 있는 시설물들이 꽤있다. ‘암자(庵子)’는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이나, 승려가 임시로 거처라는 곳을 말한다는데, 이곳은 큰 절도 없을 뿐더러 여느 암자보다는 규모가 엄청 큰 편이다. 아무래도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연주암을 찾아 물어봐야겠다.
이제 산을 내려가려는데, 처음부터 계단에 눈이 쌓이고 일부는 얼음이 되어 꽤 미끄러워 보인다. 그래도 끝까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버텨보려 한다. 이정표를 보니 연주대에서 과천향교까지는 3.2km다. 그리고 과천향교에서 과천역까지는 다시 650m쯤 더 가야 한다. 그러니까 산행거리로 치면, 관악산역이나 사당역으로 가는 것보다 1km 이상 짧기 때문에 하산길은 언제나 이 루트를 택하는 편이다.
내려오는 길에 일단의 군인들을 만났다. 비무장으로 올라오고 있어서 그냥 보기엔 군인인지 몰랐는데, 옷에 ‘ROKA(Republic of Korea Army)’라고 새겨져 있어서 훈련 중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리고, 한참 뒤에 뒤처진 군인 둘을 데리고 올라오는 리더인 듯한 사람도 만났는데, 앞에 올라간 무리들이 잘 가고 있느냐고 묻길래,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하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중간쯤 내려오니 눈길이 끝나 걷기에 한결 편하다. 그러니까 끝까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오르내린 셈이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줬는데도 다행히 쥐도 나지 않았고. 전에는 산행하면서 쥐난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중산리코스로 지리산에 올라가다 쥐가 난 후로 북한산에 올랐을 때도 다시 쥐가 났던 경험이 있던 터라 더 조심스러웠는데, 무사히 내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10시35분, 과천향교(果川鄕校)까지 내려왔다. 안내문을 보니,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관악산 기슭에 창건했다가 숙종 16년(1690) 지금 자리로 옮겼으며, 한때 시흥향교였다가 1996년 다시 과천향교로 복원했다.” 그런데 내부는 공사중이라 홍살문과 대문 사진만 찍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여기서는 과천역과 정부종합청사역까지 거리가 거의 같아 항상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이게 되지만, 오늘은 과천역으로 가서 귀가했다.
과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번(사당.교대.오금) 환승한 후, 개롱역에 있는 ‘홍콩반점’에 들러 가장 저렴한 짜장면을 한 그릇 먹고 집으로 왔다. 식사로 짜장면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중국집에 가도 볶음밥이나 짬뽕을 주로 먹었었는데, 처음 먹어본 짜장면 맛은?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