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21일 (화) 흐림
가까운 곳인데도 여느 때와 같이 5시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차를 몰아 하남시벤처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직 7시도 채 안됐다. 그러니 주위를 아직 어둡다. 그나마 마을불빛 있는 곳은 좀 나았는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니 발 밑도 잘 안보일 정도다. 혹시나 해서 가져갔던 헤드랜턴이 이럴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산길을 가는데, 주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산길에 큰 장애물은 없으니 불빛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이렇게 야간산행 할 예정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이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6시55분,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1.11km 지난 지점에서 검단산 정상까지 2.4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가 주차장에 아주 가까우니, 올라가는데 3.57km를 걸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온 거리는 거의 평지였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에 해당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검단산의 역사와 유래’에 대한 안내문이 보인다. “검단산 동쪽에는 팔당호 상류가 있고 북쪽으론 한강이 흐른다. 북악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론 남한산이 이어진다. 서쪽으론 서울을 바라보며 관악산과 마주하는 영산이다.”
또한, “1414년 태종이 검단산 신에게 제사 지냈고, 태종과 세종은 사냥을 즐겨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주목 진산 (鎭山)’으로 기록돼있다. 17세기 쓰인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는 백제승려 검단(黔丹)이 기거했기 때문에 ‘검단산’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행 중에 이정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올라가다 보니, 포스코에서 2022년에 설치해놓은 ‘솔라스톤’에 이르러서야 전에 다니던 길과 다른 길로 올라왔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느 길로 왔든 비슷한 만큼 힘들었을 테니까.
다시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조금 오르다 보니 이곳에도 부러진 소나무들이 보인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의 모든 산에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소나무만 부러뜨려놓았는지 모르겠다.
산을 점점 가팔라진다. 길바닥도 흙에서 돌로 바뀌었다. 더구나 올라갈수록 눈이 남아있어서 미끄러워진다. 이래저래 점점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정상을 300m 남짓 남겨둔 지점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50m 더 길다고 표시돼있다. 왼쪽 길을 보니 경사가 훨씬 심해 보여 오른쪽 길로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왼쪽 길이 좀더 힘들 순 있어도 꽤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제 되돌아갈 순 없게 됐다.
8시가 채 안된 시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석보다 오른쪽으로 빨갛게 떠오는 태양이 먼저 보인다. 흐린 날인데도 해가 뜨는 게 신기한데 전에는 본 적 없을 정도로 빨갛다. 하지만 사진에 담으려니 너무 조그맣게 보인다. 2배율로 당겨서 찍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다시 정상석 사진을 찍고 인증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부탁할 수도 없다. 그런다고 셀프로 찍으려니 구도가 영 안 잡힌다. 할 수 없이 이대로 포기. 하지만 하산하고 있는데 사람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기다렸어야 하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유길준묘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정상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3.92km다. 올라올 때보다 산행거리가 350m 정도 더 긴 셈이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이니 당연히 한결 수월하다. 그런데, 올라오는 사람들은 꽤 힘들어 보인다. 당연하지!
8시3분에 하산을 시작해 40여분 만에 유길준 묘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길준(兪吉濬)을 비롯한 가족묘역인 것 같다. 봉분이 여럿 있었다. 유길준은 일본과 미국유학은 물론, 신사유람단에 참여하는 등 신문물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다. 또한 미국유학 중 보고 배운 것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백과사전 <서유견문(西遊見聞)>의 저자로 유명한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것 말고도 많은 저술을 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월남참전기념탑을 지나고 주창에서 차를 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