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雪中山行 사패산(賜牌山), 돌아갈까?

by 이흥재

2025년 1월31일(금) 눈


이번주에는 명절과 날씨 때문에 산행을 미뤄오다, 눈이 올 거란 일기예보를 알고도 오늘 사패산엘 가기로 했다. 미뤄봤자 내일은 비가 온다니 더더욱 갈 수 없고, 일요일은 돼야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좀 무리해서 출발하기로 한 거다.


그런데, 산행에 앞서 사패산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산이름에 대한 사연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의 자료에는 “조선 14대 임금 선조(宣祖)의 여섯째 딸 정휘옹주(貞徽翁主)가 유정량(柳廷亮)과 혼인할 때 하사한 산이라서 사패산(賜牌山)이라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양주시에서 관리하는 <디지털양주문화대전>에는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산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큰 봉우리의 바위모양이 삿갓처럼 생겨서 ‘갓바위산’ 또는 ‘삿갓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조가비처럼 생겼다 해서 일부에서 사패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대부분 지도가 이것을 따라 쓰는 바람에 사패산이 됐다고 한다. 또는 조선 선조가 딸 정휘옹주에게 하사한 산이어서 사패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도 한다”고 나와있다.


한편, 예전 신문기사(<문화일보> 2011.10.7, ‘불·수 – 도·북 사이에 낀 막내 山, 형님들 틈에서도 늠름하구나’)를 보면 사패산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1980년대 이전엔 신문에 ‘사패산’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고, 주변에선 ‘갓바위산•삿갓산’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사패산은 임금이 왕족이나 공신에게 산을 하사할 때 붙이던 일반명사여서 구리의 시루봉도 남양 홍씨에게 내렸다 해서 ‘사패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사패산이란 이름은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정휘옹주와 유정량의 슬라이드 58

혼인에 대한 기록은 <선조실록>에 나와있지 않다. 현대 들어 군사지도를 만들 때 산정상이 조개모양 같아 ‘사패산’으로 지었다고도 한다. 이런 사패산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90년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공사 때 사패산 터널 때문에 인근사찰과의 마찰로 2년여간 공사가 중단되면서 ‘사패산’ 이름이 정착됐다.”


그러니까, 이유야 어찌됐건 지금은 그저 사패산이라고 부르면 되는데, 자꾸 윤색(潤色)하려다 보니, 사실관계도 확실치 않은 사연을 정설인 것처럼 갖다 붙이면서 나 같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유감이다.


아무튼, 오늘도 5시 반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는데, 약간의 눈발이 보이긴 해도 산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듯했다. 그런데, 부지런히 걸어 개롱역에 도착했더니 탑승시간이 10분이나 남았다. 그러니까 1~2분 전에 앞차가 출발했다는 거였다. 어쩔 수 있나!


다음 지하철을 타고 군자역과 도봉산역에서 갈아탄 후 회룡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갔는데, 눈이 제법 내린다.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기 위해 바삐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는데, 나만 조그만 배낭을 짊어지고 눈까지 맞으면서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다. 그런데 걷고 있으면서도 이 눈을 맞으며 계속 가야 하나 망설여진다.


그러면서 회룡탐방지원센터까지 갔는데, 부지런한 직원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하지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으니 하루 종일 저러고 있어야겠구나, 쓸데 없는 걱정을 한다. 그리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회룡사(回龍寺)까지 가서 산행을 계속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하고 다시 경사진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회룡사로 올라가는 길에도 눈청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비로 쓰는 게 아니라 송풍기를 짊어지고 눈을 날리고 있었다. 지금도 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데, 이 사람도 언제까지 저럴 건가 또 한번 쓸데 없는 걱정을 하면서 올라간다. 혹시 미끄러질지 모르는 나만 걱정하면 되는데.


8시17분, 회룡사에 도착했다. 눈을 치우고 있는 여승 한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 세워놓은 회룡사 연혁(沿革)을 보니, “회룡사 (回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末寺)로, 신라 신문왕 1년(681) 의상(義湘)이 법성사(法性寺)로 창건했다.”


그런데, 이 절 이름에 대해서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연을 길게 설명해놓았다. “고려 우왕 10년(1384) 무학(無學)이 중창한 뒤, 조선 태조와 함께 3년간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하고 조선을 건국한 後 절 이름을 회룡사로 했다. 태종 3년(1403) 태조가 함흥에서 귀경한 뒤 무학을 찾았을 때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 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로 돌아옴)를 기뻐해 회룡사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 역시 <조선왕조실록>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아니 회룡사란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자료(https://여기유.com/)에는 회룡사의 이름과 창건연대에 대한 출처를 밝히고 있다. 즉, “고종18년(1881) 우송(友松)스님이 쓴 <회룡사 중창기 (回龍寺 重倉記)>에는 ‘태조7년(1398)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사인 무학을 방문해 며칠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회룡(回龍)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창건연대에 대하여 1977년 봉선사에서 발행한 <봉선사본말사약지 (奉先寺本末寺略誌)>에서는 ‘681년 의상스님이 창건해 법성사라고 했다’고 한 반면, 권상로가 편찬한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에는 ‘무학대사에 의해 1384년 또는 1395년 처음 창건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회룡사 경내에 들어가 눈을 맞고 있는 전각을 하나씩 둘러본다. 먼저 취선당 (聚禪堂)을 만난다. 2000년 개축한 2층 건물인데, 아래층은 공양간, 위층은 선원(禪院)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설화당(說話堂)이 있는데, 요사채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절에서 요사채가 경내 한켠 한적한 곳에 있는 것 같던데, 이곳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게 이채롭다.

20250131_082040.jpg

안쪽으로 가면 극락보전(極樂寶殿)과 대웅전(大雄殿)이 직각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은 어느 절에나 있는 흔한 당우(堂宇)인데, 무량수전(無量壽殿)• 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하는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당우라고 한다.

20250131_082531.jpg

이제 회룡사를 나와 갈림길에 섰다. 눈을 맞으면서 산행을 계속 하느냐, 집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산길에는 눈이 쌓여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이 지나간 것 같긴 한데, 그사이 내린 눈이 발자국을 덮어버렸다. 산길 초입에는 ‘기상특보(호우•대설•태풍 등) 시 입산통제’란 경고목이 세워져 있다. 오늘은 대설(大雪)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그걸 누가 판단하나? 등산할 수 없도록 길을 막아놓나? 잠시 망설이다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20250131_083224.jpg

그런데, 또 하나 결정해야 할 게 남았다. 스노우 체인을 착용해야 하나, 그냥 갈까? 이것 또한 갈 데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미끄러워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으면, 그때 착용하는 걸로! 산길에 눈이 쌓여있긴 해도 다행히 미끄럽지는 않다.


이정표를 보면서 산행거리를 계산해보니, 회룡탐방지원센터를 기준으로 회룡역까지 1.2km, 사패산까지 3.6km니 총 4.8km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으니 신경 쓰인다.


사패산을 1.2km 남겨둔 지점에 자운봉까지 2.3km란 이정표가 보인다.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는 2.4km 왔다. 인터넷에서 산행기를 보면, 사패산과 도봉산을 한꺼번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나는 한번도 도전해본 적이 없다. 이정표를 보니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 코스를 도전해볼 생각은 아직 없다.


다시 사패산을 0.6km 남겨둔 지점에서 의정부시청까지 2.7km란 이정표를 만났다. 사패산까지 갔다가 회룡역까지 돌아가는 걸 걱정했었는데, 의정부시청 쪽으로 내려가면 하산거리가 2km쯤 줄어드니, 이쪽으로 내려가야겠다 생각하면서 산행을 계속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한두 명 만난 後 9시38분, 사패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시간을 잰 건 아니지만 2시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정상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다. 눈은 계속 내리지만 바람이 심하지 않아 춥지 않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땀과 눈에 옷이 젖어 축축하다. 오늘은 갈아입을 옷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정상에서 사진 몇 장 찍고 하산을 시작한다.

20250131_093849.jpg

내려오면서 보니,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 말고도 눈을 맞으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또 있다니! 그중에는 장갑도 모자도 없이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추운데!


내려오면서 한번 미끄러진 후에야 스노우체인을 착용했다. 역시 내려오는 게 훨씬 수월하다. 반면에, 고무로 심하게 쪼이기 때문에 발등이 조금 아프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아야지! 옷이 점점 젖어 우산을 펴 들었다.

의정부시청 쪽으로 내려가다 갈림길을 만났는데, 그곳 이정표에는 ‘의정부시청’ 표시가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사람한테 의정부시청역 방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그런 역이 있느냐는 투다. 다시 마주오는 사람한테 재차 물었더니, 자기가 그곳에서 올라왔으니 그 길로 가라고 한다.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다시 한번 길을 확인한 後 의정부시청 바로 옆에 있는 경전철역에서 경전철을 타고 회룡역과 도봉산역, 그리고 군자역에서 갈아타고 귀가했다. 오후 1시가 가까워오는데, 아직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간식만 먹고 말았다. 오늘은 저녁을 일찍 해 먹어야 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봉산, 녹야선원 ~ 정상~ 마당바위 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