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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雲吉山,610m) 과 수종사(水鐘寺)

by 이흥재

2025년 2월18일(화) 맑음


지난달엔 첫날 북한산엘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한양도성길을 포함해 7번이나 산엘 다녀왔는데, 이번달엔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오늘이 첫 산행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운길산과 수종사다.


그동안은 예봉산을 거쳐 운길산까지 몇 번 산행한 적이 있지만, 단독으로 운길산만 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리고 운길산엘 가려면 전철을 타고 운길산역까지 가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2번이나 갈아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주차할 수 있는 조안면 체육공원까지 23km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오늘도 5시반 알람소리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곧바로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많이 풀렸던 날씨가 오늘부터 기온이 다시 조금씩 내려가면서 아침공기가 좀 차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긴 했었다.


아직은 아침 6시 정도 이른 시각인데도 거리에는 차들이 꽤 많다. 그래도 트래픽잼(traffic jam)이 없으니 교통신호만 잘 받으면 막힘 없이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각에도 무인단속 카메라는 언제나 작동하고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하긴 한다.


팔당대교를 건너기 위해 하남IC로 빠져나가는데, 이른 시각이라 통행료 50%가 할인돼 400원이 결제된다는 네비게이션의 안내멘트가 들린다. 큰 금액이 아니어도 어떻든 400원 번 셈이다. 그리고 팔당대교를 건너 오른쪽 방향 ‘경강로(京江路)’로 가니 차들이 많지 않다.


조안면 체육공원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6시37분. 어둠이 가시고는 있지만 아직은 주변이 뚜렷하게 보이는 건 아니어서 헤드랜턴을 착용했다. 이곳 주차장은 지난해부터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오늘 산행은 네이버지도에 나와있는 등산로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앱을 켜고 등산로 시작지점을 찾아가는데, 길이 없다. 빙 둘러가는 길이 있긴 하지만 조그만 개울 옆을 따라 시작지점을 찾았다 싶어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애매해서 약초꾼들처럼 길도 없는, 낙엽 덮인 돌산을 무작정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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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분쯤 오르다 보니 날이 밝아오면서 산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밝아서 보이는 건 아니다. 어디로 연결돼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지점부터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나니 반갑다. 그렇다고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덜 위험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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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올랐을까, 운길산역 1.8km 이정표가 보인다. 30분 정도 올라온 셈이다. 정상까진 1.3km다. 오른쪽으로 가면 수종사까지 780m란 표시도 함께 있는데, 어차피 수종사는 내려오면서 들를 예정이기 때문에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데, 산속이라 나무들이 많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뭇가지를 배경 삼아 일출사진을 몇 장 찍어둔다. 일상생활에서는 일출장면 보는 게 쉽지 않아 특별한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순례길을 걸을 때는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 흔해 일출 보는 날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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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정상을 270m 남겨둔 지점부터 산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올라오는 길에는 별로 보이지 않던 눈이다. 아마도 응달면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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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픈 숨을 몰아 쉬며 정상에 오르니 아침 8시가 조금 지났다. 전망데크 옆에 세워진 정상석도 사진에 담고, 멀리 보이는 예봉산도 찍었다. 전망데크 주위를 돌면서 떠오르는 해와 먼산의 설경도 함께 찍었다. 그리고 막 하산하려는데 누군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싶은 마음에 잠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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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올라온 사람이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몇 장 찍은 다음 그 사람 사진도 찍어줬다. 그런데 찍어준 게 고맙긴 하지만 오늘도 만족스런 사진을 얻진 못했다. 조금 더 성의 있게 찍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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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가다 산에 걸려 멈춘다고 해서 ‘운길산(雲吉山)’이라 불린다는데, 구름이 걸린 만큼 높은 산은 아니다.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는 조곡산(早谷山)으로 소개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과 세종,성종이 ‘조곡산’에서 사냥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현재의 운길산을 조곡산으로, 지금의 적갑산,철문봉,예봉산 줄기를 운길산으로 기록했으며, 1890년 지은 <수종사 중수기(水鐘寺 重修記)>에 ‘운길’로 나온다고 하니 언제부터 이름이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이제 수종사 방면으로 산을 내려간다. 그런데, 쌓인 눈이 얼어있어 꽤 미끄럽다. 등산화도 너무 오래돼 바닥이 닳아버려 마찰력이 없어져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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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에도 큰 소나무들이 여럿 부려져 있다. 근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바람이 불었길래 서울주변 온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이렇게 부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마구 쓰러진 나무를 가지런히 다듬어놓아 산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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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30분쯤 수종사에 도착했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조금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해탈문(解脫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경내를 둘러본다. 산 경사면을 깎아 지은 사찰이라 한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왼쪽에 계단을 올라 응진전 (應眞殿) 과 산신각(山神閣) 이 있고, 장면에 선불장(選佛場)과 대웅보전 (大雄寶殿), 맞은편엔 다실(茶室)인 삼정헌(三鼎軒)이 있다. 삼정헌은 이른 아침이라 문이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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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옆에는 보물인 사리탑(舍利塔)과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이 나란히 있는데, 사리탑은 태종과 의빈권씨(懿嬪權氏)의 딸인 정혜옹주 (貞惠翁主)를 추모하고자 제작한 승탑이며, 석탑은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연대(1483년[성종23])가 확실하고 조각이 섬세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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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을 지나 사찰 초입에는 범종각(梵鐘閣)과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와 수종사에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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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世祖)가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고 한강을 따라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운길산 인근에서 묵게 됐다. 세조가 야경을 바라보던 중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세조는 한밤중에 종소리가 나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인근에 절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근방에 절은 없고 절터만 남아 종소리가 날리 없다는 대답을 들었고, 세조는 날이 밝자 사람을 시켜 주변에 절이 있는지 찾게 했다. 머지않아 한 사람이 와서 절터 암굴에 18개 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천장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며 마치 절에서 치는 범종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전했다. 세조는 암굴을 발견한 것을 부처의 뜻으로 여기고 기이하게 여겼다. 그리고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났다고 하여 ‘수종사(水鐘寺)’라 이름 짓고 절을 세웠다. 세조가 중창 당시 은행나무 2그루를 심었는데,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디지털 남양주문화대전).”


위 ‘수종사 창건설화(水鐘寺 創建說話)’는 출처가 명확치 않다. 그저 남양주 일대에서 전해지던 구전(口傳)을 채록해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제목도 ‘설화’다.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고, 왕에 대한 거의 모든 기록이 <실록>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출처를 알 수 없다는 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선불장 나무기둥에는 주위 풍경을 노래한 한시가 적혀있었다.
寺下淸江 江上烟 절 아래 맑은 강에는 물안개 자욱하고

峯巒如畵 揷蒼天 그림 같은 산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았네
有力雷公 藏不得 거센 천둥도 기세를 감추진 못하니
百花香動 鷓鴣啼 꽃들이 향기 풍기고 자고새 지저귀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자고새(鷓鴣)는 꿩과의 새로, 메추라기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해탈문을 통해 수종사를 나와 불이문(不二門)과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콘크리트로 포장된 찻길이 경사가 너무 심해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계곡길이 있어 내려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내처 포장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그렇게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타고 집에 왔는데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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