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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Jul 14. 2016

프레임에 갇히다.

스스로 만드는 제약들

No limit.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망설여지고 용기가 없어지는 경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면의 소리들 때문일 것이다.

 

자격과 경험이라는 환상


어떤 경우, 특히 창의적인 분야라면 7년의 경력자보다 날 선 감각으로 완전히 몰입한 1년 남짓한 애송이가 더 뛰어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사실 그 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뿐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동기이다.

그런데 자격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배받아 작은 취미로도 시작하는데 망설였던 적이 많았다. 이 직업은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특정 기간 학습한 사람,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야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틀에 갇혀서 생각한다.

나는 산업디자인 전공이지만 웹디자이너 일을 했고 지금은 그림을 그려서 책을 만들고, 제품에 활용하고 싶다. 그래도 비슷한 류의 일들이지만 딱 맞는 전공을 한 적이 없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내 성격에 어렵지 않을까?'라는 제약을 스스로 걸어버린 적이 많다. 마치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공이나 경력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이미 많고 오히려 크게 잘 되는 사람은 그렇게 다른 분야에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Frame


우리들 대부분은 특정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조지 레이코프가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에서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심리학에서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며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하고 생각을 어떻게 프레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


문제는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타인이 씌운 프레임에 갇힌 생각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아이덴티티라는 것들 대부분 다른 사람의 평가와 사회적으로 영향 받은 세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고등학교 때 명문대를 못 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와 관련이 없었다.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줄 알았지만 다양한 경로로 먹고살 길은 있어왔고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기에는 찾는 이에게 새로운 길이 보인다. 여전히 결혼은 특정 나이가 되면 수행해야 할 task처럼 '왜 결혼을 안 하냐'며 물어보지만 이는 맞는 질문이 아니다. 결혼은 인생의 한 가지 선택지일 뿐, 시기도 유무도 정답은 없는 것이니까. 아이를 낳는 것도 마찬가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왔던 가치관들은 사실 공허하리만큼 실체가 없는 것들이 많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서 봤던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끝없이 올라가는 애벌레들처럼. 

 

다른 사람이 정의하는 말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말자.

네가 하는 일은 전망이 없고 박봉에 야근에 힘들어, 그 일은 위험해, 너의 연봉은 이만큼이 적당해, 너의 성격으로는 어려울 거야,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게 행복이야, 여자는 나이가 생명이지, 야근을 안 하려는 것은 몸 사리는 태도야, 회식에도 참석하고 술도 잘 마셔야 사회생활을 잘 하는 건데.. 등등

각자의 가치관으로 (대부분은 그 역시도 남에게 주입받은 가치관들) 충고하는 말들은 사뿐히 흘려 넘겨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 만이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무의식 중에 타인의 영향을 받고 그 내용을 글로 적고 있는지도 모른다.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역시나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후에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모든 것은 변하고 정답은 없다는 것.



동물원 코끼리 이야기 (혹은 학습된 무기력 혹은 노예근성)

서커스 단의 커다란 코끼리는 작은 말뚝에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충분히 말뚝을 뽑아 버린다던지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커다란 코끼리지만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처음 서커스 단에 들어온 코끼리는 같은 말뚝과 쇠사슬에 묶여 지내왔습니다. 자유로워 지기 위해 몸부림처 보지만 어린 코끼리에게는 말뚝과 쇠사슬은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계속되는 실망 속에 어린 코끼리는 좌절만을 경험하고 이에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성장한 코끼리는 서커스 단에서 힘이 세고 육중한 존재가 되어서도 여전히 말뚝과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공 (空)


불교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때문인데 여기서 알게 된 공 사상, 무아라는 것이 궁금했다.

공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 교리이다. 현대철학적으로 보면 공은 존재들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념적으로 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 나를 정의하는 것들 대부분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 들이다. 

내가 속한 조직,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의 재능, 누군가의 딸 같은 역할, 혈액형이나 MBTI로 정의한 나의 성격 이런 것들이 나라고 믿고 살아왔다.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것은 껍데기 = 허상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진실은 그런 것은 없다는 것뿐이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은 없다. 사실은 그냥 아무것도 없다.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그러니까 무엇이든 생각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고쳐먹어 보았다. 프레임이라는 것을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무엇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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