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방콕 여행 - Well, Lamurr, Avani
방콕에 묶는 3주 동안 3군데의 숙소를 경험했다. 처음 며칠은 호텔에서 그간의 노고를 풀고 마음껏 누리고 쉬겠다고, 그리고 중간은 호스텔에서 묶으며 장기로 지내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 마지막은 다시 호텔에서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는 계획이었다. 방콕에는 참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고 최근에는 에어비앤비까지 가세하여 선택의 폭이 참 넓었다. 호스텔도 시설이 깔끔하고 인테리어에 신경 쓴 프라이빗한 곳도 눈에 띄었기에 호기심반, 하루 1~2만 원의 매력적인 가격에 끌려 묶게 되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호텔에 묵는 것이 좋지만 3주라는 시간을 호텔에서만 보내기에는 비용 부담이 됐고 혼자 갔기에 호스텔 특유의 여행자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방콕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항공편이 밤늦게 도착하는 데다가 내가 탔던 비행기가 2시간이나 연착을 하는 바람에 피곤이 쌓여 있었다. 이 호텔은 그런 나의 피로와 그간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신규 호텔이라 프로모션으로 공항 픽업, 룸 업그레이드와 무료 마사지를 받고 기분이 좋았는데, 마침내 생일이 끼어있어 호텔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쿠폰까지 제공해주었다! 혼자 방콕에서 맞는 생일을 아주 기쁘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호텔의 친절한 직원들,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한숨자는 시간, 매일 정돈되어 있는 침구는 정말 현실에서 잠시 떠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청소하지 않아도 되고 음식도 사 먹고, 모든 것을 누군가 해주는 생활인 것이다. 나는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마사지받고 들어와 푹 쉬면 되는 것, 자질구레한 일상의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일수록 친절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이 곳 역시 오픈하지 1년 남짓한 곳이어서 한국인 후기도 거의 없었기에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갔었다. 하지만 불안을 상쇄할 만큼 가격 대비 룸 컨디션과 친절도에서 만족스러웠고 위험부담을 안은 보람을 느꼈다. 며칠 후면 호스텔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호텔에 있는 동안 모든 서비스를 경험해보고자 시내 구경은 조금 미루고 마사지와 룸서비스, 수영장 등 호텔 놀이를 충분히 즐겼다. 마사지사가 한국말을 잘해서 인상적이었다.
이 호텔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도와줬던 직원을 나중에 demo 클럽에서 마주친 건 비밀!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호스텔과 호텔의 온도차. 어쩌면 돈으로 어디까지 살 수 있나를 느낀 시간이었다. 가격이 저렴한만큼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들이 추가된다. 일단 소음. 칸막이가 있지만 옆 칸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에어컨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 공동화장실, 샤워 시 욕실까지 수건과 세면도구를 들고 갔다가 다시 들고 오는 불편.
하지만 이 호스텔은 가격 대비 정말 훌륭했다. 너무나도 친절한 직원들,, 착하고 친절한 것만 보면 호텔보다 친절하다고 느낄 정도. 도미토리는 개별 침대마다 완전히 칸막이가 되어있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깔끔한 침구 상태도 좋았고, 원하면 매일 커버 교체도 가능했다. 또한 매일 간단히 조식 제공, 늘 커피와 물 제공, 에어컨 풀가동, 와이파이 등 이만한 가격에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묵은 호스텔은 그리 붐비지 않았고 공동 세면실의 경우에도 시간차만 두면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10일이나 묵었던 A04번 내 자리. 침대로 쏙 들어가 노트북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때 다락방에 올라가서 키득거렸던 느낌이 생각났다. 좁은 공간이 주는 비밀스러움, 아늑함.. 묘한 매력.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사람들과 오가면서 인사하는 게 전부, 함께 공간을 쓰고 있지만 분리된 그 느낌이 좋았다.
이 호스텔도 신축이라 한국인 후기가 단 한 개도 없었다! 하지만 예약사이트에서 9.6점이라는 가장 높은 평점을 가진 호스텔이었기에 역시나 불안함을 조금 안고 예약을 했었다. 묵어 보니 높은 평점이 이해가 되고 신축답게 깨끗한 환경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층의 조식 먹는 오픈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경우도 많은 듯했다. 새로운 외국인 혹은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호텔보다 호스텔이 좋을 수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차오프라야 강변의 호텔에서 묵어보고 싶어 열심히 검색을 하던 중 인피니티 풀장을 보유한 강변의 호텔 아바니 리버사이드로 최종 결정을 했다. 예전에 아난타라 호텔에 묵은 적이 있는데 바로 뒤에 위치한 호텔이었고 역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이었다. 급작스럽게 예약을 해서 반신반의했는데 호텔에 도착해보니 대만족!! 건물 전체가 강 쪽을 향하고 있어 어디서든 뷰가 일품이었다. 체크인하는 곳부터 11층에 위치해서 전망이 정말 좋았고 시설, 룸 컨디션, 인피니티 수영장, 루프탑 바 뭐하나 단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다. 너무 좋아서 시내로 나가지 않고 꼬박 호텔에만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맨 위층에 위치한 수영장으로 향했다. 복잡한 시내와 떨어져 있다 보니 높은 건물이 전망을 방해하지 않았고 인피니티 풀과 하늘을 바라보며 선베드에 누워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싶었다. 사람들이 왜 전망이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 호텔에 묵었을 때 이해가 되었다. 강을 끼고 있는 시내를 향하며 탁 트인 하늘까지 연결된 뷰가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해주는 느낌이었고 돈을 많이 벌어서 전망이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선베드에 누워있는 데 좌우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방콕에는 참 한국인도 많고 외국인도 많은데, 호텔도 많고 마사지샵도 많고 휴식과 여행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기에 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낮잠을 한 숨 자고 밤이 되어 수영장 옆에 연결된 루프탑 바에 올라갔다. 낮에 보는 전망도 좋았지만 밤에 보는 야경은 3주간의 여행에서 최고의 시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시내에서 여러 군데 루프탑 바에 갔었지만 이 호텔에서 본 야경이 가장 좋았다. 시내 중심에서 360도의 뷰를 보는 것도 마음을 반짝반짝하게 해주지만 강가에 반짝반짝 비치는 불빛과 멀리서 보는 시내의 야경은 좀 더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마냥 '좋다,, 너무 좋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서울로 돌아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야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폰카메라라 사진은 올리지 못하지만 아무리 좋은 카메라였어도 실제로 보는 감동을 대신하진 못했을 것 같다.
호텔과 호스텔을 오가며 얻은 것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건강한 '의욕'이었다. 돈은 낸 만큼의 서비스를 돌려주고 그만큼의 만족과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동안 너무 외면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돈을 좇는 것에 대한 왠지 모를 부정적인 분위기, 돈을 얻으면 그만큼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등은 욕심의 긍정적인 부분까지 억제해버렸다. 돈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돈으로 양질의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떠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긍정적인 욕심을 충전하게 해 준 3주간의 방콕 여행은 2017년을 더욱 잘 살게 만들어줄 것 같다. 이래서 여행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