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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Jul 09. 2021

철필

글의 해상도가 낮아진다.

 단상은 기록이 되어야 자신과의 유리를 떠나 불가분의 관계로 완성됩니다. 그 기록의 공간은 독립된 것이 아니며 물리적 필술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어야 더 오랫동안 유지되는 강력한 효능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 단상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알려고 싶은 것이 아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래는 극소수의 지인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 기록을 하곤 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걸쳐 유입된 이들이 많아지며, 그 기록들은 이들로 인하여 자기 검열을 거쳐 '흔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키보드는 묘사의 매개체가 아닌 윤곽의 흔적을 그리는 '철필'이 되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통념'과 '망념'의 차이는 종잇장과도 같이 얇다고 생각합니다. 통념은 망념과 같은 공상들에서 공통된 것을 취합한 집합체와 다르지 않고, 그렇기에 조금 어긋난 생각들도 기실 규정된 정의와 큰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근데, 이 마저도 제 생각이고. 비도덕이라는 잣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이 없는 흔히들 판단하는 '옳은' 정답의 글만을 쓰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 검열의 근본은 이 외에도, 자신을 밝히고 싶지 않은 본능에서 나온 것인 듯하기도 합니다. 글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성장배경을 내재시킵니다. 밝히고 싶지 않은 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나의 글을 전시할 때, 그 글 속에 내가 없기를 바란다니, 조금은 모순되는 것이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죠.


 자신이 터부시 하는, 게토화 시키고자 하는 것을 글로 적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가장 용기 있는 글 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직 그런 용기는 없기에. 이런 단상만을 적어나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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