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블로킹의 아름다움, 1.

배알못의 힘겨운 알아가기 과정.

by 이홍


견고하게 쌓인 블로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 모두가 다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저번 시즌까지 알지 못했다. 해설과 캐스터도, 배구선수도, “손맛”을 보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 “손맛”이 뭘까? 그냥 공격 하나 막은 거 아닌가? 그때만 해도 배구가 촘촘하게 연결된 팀 스포츠라는 걸 잘 몰랐다. 공격 상대가 뜰 때 같이 떠서 막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알못의 짧은 생각. 이건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다.

블로킹보다는 득점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블로킹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정신 차려보니 블로킹이 너무 좋아서 살 수가 없었다...

블로킹 득점만 나면 심장 고동이 미친 듯이 솟아오른다. 홈 직관에선 큰 소리를 내는 반면, 중계를 볼 땐 조용하게 박수만 치는데(그나마 잘 안한다. 멍하게 보다고 오... 입모양으로 감탄한다), 꼭 블로킹 득점만 나면 아악! 소리 지른다. 그리고 내가 지른 소리가 커서 화들짝 놀라게 된다.

블로킹의 매력이란... 벗어나려는 공을 쓸어서 코트 안으로 넣는 것도 좋고, 상대 공격 읽고 정확하게 떠서 벽에 공치듯 만드는 것도 좋고, 손 모양 잡아서 공을 그대로 코트 안에 꽂아 넣는 것도 좋고, 강하게 오는 공격 튕겨내면서 벗어날 듯 안 벗어나게 라인 물리는 것도 좋고, 그냥 다 좋음. 블로킹이 최고인 거 같아요. 배구에서 블로킹만큼 짜릿한 게 없다(제 기준입니다).

또 블로킹이 최고인 이유는 내가 원래 블로킹 자체보다 상대 블로킹을 이용해서 터치 아웃을 유도하는 공격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공격 득점이 좋았다. 시원하고 멋있잖아. 아무래도 최애 선수가 아웃사이드 히터이기 때문일까? 대각으로 공을 코트에 꽂을 때가 제일 좋았지, 블로킹... 서브 득점... 그닥...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흥국생명이 홈 경기장에서 한국도로공사와 경기하고, 상대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아내며 승점 3점 가져온 상태다. 매우 흥분했고, 내가 이 구단을 너무 사랑하고, 블로킹 최고, 흥국 산성, 벽이 올라옵니다, 아무도 뚫을 수 없습니다, 흥국을 사랑해, 오직 승리뿐이야.


사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살기 위해 급하게 먹었던 취미라서, 배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공 세 번까지 받을 수 있고, 네트 넘겨서 상대편 코트에 넣으면 득점! 심지어 배구는 무조건 손으로만 하는 줄 알았다.

손에 안 맞으면 터치가 아닌 줄 알았던 시절. 발로 디그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다음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일본 배구 만화가 생각났다. 리베로가 공을 발로 디그 하는 장면. 그게 왜 멋있는 거지?

만화책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봤고, 애니메이션의 연출이 좋아서 머릿속에 남은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애니메이션은 배구선수인 캐릭터들이 ‘공에 집중한다’는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동자와 그 안에 담기는 공과 코트, 그리고 눈동자의 움직임에 굉장히 신경 쓴 연출이 많았다. 코트 안의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게 연기하는 성우의 숨소리만 넣은 연출도 있고.

내가 떠올린 장면에서도 상대 팀 세 명의 선수가 블로킹을 뜬다. 우리 팀의 공격이 막힌다. 공은 공격수의 뒤로 떨어진다. 그 순간, 리베로는 공을 따라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뻗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거기에 슬로우가 걸린다. 느리게 떨어지는 공과 너무 늦었음을 직감한 리베로가 손을 꿈틀거린다. 떨어지는 공을 시선이 따라가는 대신 다리를 뻗는다. 발이 쭉 뻗어나가는 부분은 순식간이다. 리베로의 빠른 반사 신경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

성공적인 발 디그 후 고개를 드는데, 팔 위로 보이는 캐릭터의 눈동자에 단단함이 담겨 있다. 숨 막히는 침묵이 끝나고 관객들이 소리를 지른다. 누가 봐도 멋있다. 근데 발로 공쳐도 되는 거야? 저러면 축구 아님?

알못이었다. 발로 수비해도 되는 거였다. 몸에 닿으면 무조건 터치였다. 얼굴로 받아도 터치고, 배로 받아도 터치였다. 그럼 손가락 끝에 걸려도 터치인가? 맞다. 그런데 공이 바닥에 닿으면 수비 실패다. 또 생각난다. 어떤 선수가 몸을 날려서 팔을 뻗었다. 하지만 실점했다. 떨어지는 공을 손으로 막았는데, 왜 실점이야? 그야 손끝에 공이 걸리면서 바닥에 먼저 닿았으니까...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데, 상대 전술을 읽고 공격해야 한다? 이런 개념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공은 그냥 치면 되는 거고, 코트 안에 넣거나 선수 손을 치고 나가면 되는 거다. 실수로 코트 밖에 공을 던지면 실점. 블로킹은 잘 보다가 상대 팀 선수에게 맞춰서 뜨면 되는 거고, 서브는 네트 넘기면 되는 거고.

맞다. 맞는 말인데 납작하다. 그것도 너무나 많이. 생략하고 요점만 담는다면 가능한 표현이지만, 글씨를 쓰는 잉크의 양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얇다. 배구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도 다 안다거나 이 정도면 배구는 알지~ 하고 거들먹거릴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배구’가 그저 집중하라는 뜻이 아닌 건 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엔 부족하니까 그건 더 배운 다음 하기로.

아는 정도만 말하면, 블로킹에 성공하기 위해서 상대 세터가 어느 쪽으로 공을 줄지, 공을 받은 선수가 어떻게 공격을 넣을지(강하게 때릴지, 짧게 때릴지, 페인트를 넣을지, 터치 아웃을 유도할지...), 어떤 타이밍에 공을 때릴지 등등 알아야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따라가야 한다. 공격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른다.

상대 팀도 공격이 막히기를 원하지 않으니 블로킹하는 선수들을 따돌리는 공략을 세운다. 두 번째로 공을 받는 선수(세터가 대부분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가 후위 공격과 전위 공격, 코트 양 사이드에서 준비 중인 공격수에게 공을 넘길지(이때도 공격수가 때리는 순간을 정할 수 있을 만큼 공을 올려줄지, 일단 공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건져 올리는 부분에 신경 쓸지, 무조건 높게 올려서 하이볼을 만들지...), 네트 가운데에 서 있는 미들 블로커를 이용해 속공을 넣을지 결정하고 공을 건네준다. 때론 패스 페인트(직접 공격하지 않고, 공을 넘겨주는 척 속이기.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이나연 세터가 패페를 잘합니다. 신인 감독 김연경에 나왔던 그 세터 맞습니다. 저번 경기에도 했고, 득점했고,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 너무 좋아. 홈 경기만 하면 기가 막힌 패페를 해줍니다. 사랑해요. 김다솔 세터도 잘하는데, 이것도 패페라고 하나? 공이 높게 뜬 상황에서 떨어지게 되면 저 공이 우리 코트로 올지, 상대 코트로 넘어갈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코트에 오는 공이 아님에도 빠르게 떠서 공을 잡는 척 움직이며 상대 팀을 속입니다. 그렇게 공을 그대로 상대 코트에 떨어뜨리는 득점을 해낸 적이 있습니다. 패페인지 잘 모르겠지만 썼습니다. 잘하니까 자랑할 거야. 다솔 세터 진짜 사랑하고, 충무로에서 놓친 인재가 우리 구단 세터라니. 하하하)를 하며 직접 상대 코트로 공을 던지기도 한다.

상대 팀 선수들은 일단 공격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디로 공격이 갈지 모르게 만들어야 블로킹을 최대한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게 첫 번째다. 거기서 속으면 공격이 오지 않을 곳에서 블로킹을 뜰 수 있다. 공을 따라서 뛰지 않으면 상대 팀에게 공격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주는 꼴이 된다.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곳이 비어버리는 것이다.

마침내 공이 세 번째 선수에게 가면서 공격이 이루어질 때는 단순할까? 아니다. 공격하는 선수도 우리 코트와 우리 선수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 공을 강하게 때려서 코트 라인 최대한 가까이 닿게 만들어 수비를 어렵게 만들지, 공을 톡 건드려서 살짝 놓는 페인트를 넣어야 할지, 짧고 강하게 때려서 수비한다고 해도 공이 튕겨 나가도록 힘을 실을지 결정한다. 만약 블로킹을 따돌리지 못했다면 터치 아웃을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공을 넘겨받는 속도가 적당하지 않다면 생각한 공격을 못할 수 있다. 네 번 공을 치지 않기 위해 겨우 처리하는 방식으로 공을 넘겨서 상대에게 기회를 주거나, 공 자체를 넘기지 못하는 범실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니 두 번째로 공을 넘겨주는 선수와 호흡이 맞아야 한다. 세 번째 공을 받는 선수는 항상 준비해야 하고,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블로킹을 이용해 공격할 수도 있지만, 실패하기도 쉽다. 터치 아웃을 유도한다고 하지만 공이 블로커 사이를 그대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공격하는 선수의 손에 공이 정확하게 맞지 않거나 손에 많은 힘을 주거나 손목을 많이 이용해서 비틀어 때리면 그대로 아웃이 되기도 한다. 코트 양 사이드에서 공격하는 경우, 네트 끄트머리에 세워진 안테나를 건드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공이 상대 코트 안에 들어오거나 상대 선수를 터치하고 나가더라도 공격팀의 실점이다.

터치 아웃을 유도하겠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선수가 넘겨준 공을 받았는데 느낌이 좋다! 뭔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강하게 때렸다. 블로킹하는 선수의 손에 맞았지만, 막히지 않고 넘어갔다. 그럼 끝인가?

아니다. 유효 블로킹이 되면서 공격하는 사람이 공에 실었던 힘만 막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빠르고 묵직하게 오던 공도 한 번 걸리면서 속도와 무게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선수가 쉽게 리시브 할 수 있다. 그대로 공격하는 타이밍을 넘겨주게 되고, 우리 팀은 블로킹을 해야 하는 팀에서 공격해야 하는 팀으로 바뀐다.

블로킹 하나만 뜨는데 이렇게 복잡하다. 이걸 어떻게 습자지처럼 얇게 생각했을까? 알못... 어쨌든.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블로킹을 성공하는 일엔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과정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빼먹었거나 틀린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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