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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Mar 08. 2020

헨리 8세 앞에 선 한스 홀바인

권력 앞에서 이 화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헨리 8세 / 한스 홀바인


허리에는 칼을 차고, 다리를 벌린 채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서있는 이 남자. 1537년에 그려진 헨리 8세의 모습이다. 이 남자를 그리고 있는 사람은 궁정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한스 홀바인이다. 이 당당한 남자에 대해 한스 홀바인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 까?


백년전쟁을 거쳐 귀족들 간의 권력다툼으로 큰 희생을 장미전쟁의 시간의 강을 건너,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이 남자가 통치하던 시절, 권력의 옆에 서있던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다가 한 순간에 몰락해 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 남자의 주변에서 보필하던 세 명의  총리는(토머스 울지, 토머스 모어, 토머스 크롬웰) 한 때 왕의 사랑을 받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이 남자와 결혼했던 여자들은 숨 막히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 남자의 첫 번째 여인(캐서린)은 형의 아내였다가 에스파냐와의 동맹을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을 했다가 남편이 자기 시종(앤 볼린)과 바람이 나 원치 않는 이혼을 하고 왕궁에서 쫓겨나 쓸쓸하게 죽었다. 두 번째 여인(앤 볼린)은 이 남자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바티칸 교황의 힘을 약화시키고 영국 국교회를 창시하는 등 이혼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해 온 온갖 노력이 무색할 만큼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의 신임을 받지 못하다가 정치적인 모략으로 참수당했다. 세 번째 여인(제인 시모어)은 병약한 체질로 이 남자의 아이를 갖고 얼마 뒤에 사망했다. 네 번째 여인(앤)은 그녀의 초상화를 먼저 확인하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실물을 보고 실망을 해서 바로 이혼을 당했다. 그리고 그 앤을 추천한 총리(토마스 크롬웰)는 이 일로 신임을 잃고 반대파의 정치공세의 희생양이 되어 런던탑에서 참수당했다. 다섯 번째 여인은 밝기 찬 모습에 반했지만 자유분방한 그녀의 할리우드식 연애에 배신감을 느끼고 참수당했다. 여섯 번째 여인(캐서린 파)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이 남자의 여자가 되어야 했다.


이 그림이 완성된 시기는 이 남자가 왕비 캐서린을 두고 그녀의 시종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던 때이다. 한스 홀바인은 이 남자를 그리며 무엇을 보았을지 생각해본다.


이 남자의 갑옷처럼 단단해 보이는 빛나는 옷과 누구든 복종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칼은 당시 이 그림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했을지언정, 지금 내 눈에는 그 과장됨이 한 개인의 열등의식과 불안감을 감추려는 듯 보인다. 그의 주변에서 짧은 인생을 롤러코스터처럼 살다 간 사람들의 덧없는 죽음이 겹치며  무상하게 느껴진다. 한스 홀바인이 이 남자의 비정함에 마음 조리며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그의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 표정을 보며 한스 홀바인은 영원할 것 같은 그의 권력도 죽음 앞에선 깃털보다 가벼운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내심 그를 마음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대사들 / 한스 홀바인


이 작품은 ‘대사들’로 알려진 그림이지만 원래 제목은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과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s)’이다. 이 그림 왼편의 남자는 당시 20대의 젊은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장 드 댕트빌이었고, 옆에 서있는 사람은 장 드 댕크빌의 친구이자 성직자이다. 중요한 요직에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대사로 선발된 이 청춘들은 당시 인정받는 엘리트층에 속했을 것이다. 한스 홀바인은 모멘토 모리를 삶의 모토로 삶고 있는 이 젊고 총명한 친구가 늘 청청하기를 지지했을 것이다. 한스 홀바인은 권력이 얼마나 사람을 추악하게 만드는 지를  지켜봤다. 또 불꽃처럼 살아간 사람도 결국에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는 지도. 이 청춘들을 보는 애틋한 한스 홀바인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들이 서있는 카펫 위에는 해골이 숨어있다. 해골 이미지가 컴퓨터 스크린에서 비율이 왜곡되어 찌그러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당시 해골은 죽음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그림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교훈이 담겨있다고 한다. 누구나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은 사실 나의 삶에 항상 붙어 다닌다.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항상 따라다니는 죽음의 이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그래서 삐딱하게 해골을 그려 넣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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