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거추장스러워 홀대했던 감정에 대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내게 다른 반 선생님께 출력물을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 선생님이 내게 무언가를 지시하면 나는 뿌듯함을 느끼며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교실 앞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러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있었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무섭게 생긴 선생님이 교탁 앞에서 교편을 든 채 아이들을 노려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그 반 선생님은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서 있는 상황이 민망해,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도 그 선생님의 시선은 앞의 아이들을 향한 채 여전히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당시 왜 그랬는지 나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 선생님의 소매를 당겼다. 그때 그 선생님은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내 빰을 후려갈겼다. ‘쫙’ 소리가 온 교실에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반 아이들이 다들 엄청난 쇼크를 받은 듯, 눈이 모두 동글해져 있었다. 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이거 저희 선생님이 전달해 주라고 하셔서...” 말끝도 잇지 못하고 얼버무린 채 , 출력물을 잽싸게 건네고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충격이었다.
반에 돌아가서 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행여나 그 반 아이 중에 한 명이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지만, 존재감이 별로 없던 내가 몇 반인지 아는 아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기에 쉬운 시간에도 그 반 아이들 눈에 안 띄게 조심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지금까지 그 기억이 생생한 걸로 봐서는 충격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작은 일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마음을 잔잔한 호수와 같이 다스려야 된다’고 배워왔던 터라 그까짓 것 무슨 대수라며 스스로 달랬지만,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서 그때 감정이 고스란히 울컥하며 다시 올라왔던 것 같다.
내게 감정은 그냥 살아가면서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감정은 정신에도 육체에도 속하지 않는 불순물 따위로 취급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 그렇게 나는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려고 했다.
이후에 알았지만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시나브로 축적되었다. 나는 가계부도 일기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물건 따위에도 의미를 부여해 버리지 못하고 평생 간직하겠노라 했다. 마음이 휑 해질 때면 어디론가 멀리 계획 없이 떠나기도 일쑤였다. 내 몸에 쌓인 감정들이 일제이 들고일어나 반란을 일으키는 듯했다. 감정들이 나에게 오랜 기간 동안 홀대받고 서운했을 것이다. 감정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했다. 감정은 지금까지 무척이나 소중한 역할을 해왔는데 말이다. 가령, 감정이 있었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내 안에 있는 잠재되어있는 욕망을 표현하는 일도.
감정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처럼 감정에 충실한 불안정한 부류에게는 돌발행동이 일어나지 않게 적당히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글쓰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글을 통해서 내 생각을 정리할 때면 마치 대장 내시경을 하기 전 장정결제를 먹고 내 몸 안의 더러운 것들을 한 번에 쏴 내려 보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쌓인 감정은 소진이 필요하지만 그 완급조절이 중요하다. 가령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반 선생님으로부터 빰을 후려 맞고, 나도 반격해서 그 선생님의 빰을 때렸다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감정을 내보내기 전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의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내게 글쓰기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글쓰기는 감정을 언어로 정리를 하고, 뇌는 그 언어로 사고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