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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Apr 23. 2020

 빨강 머리 앤과 조커 사이

우리의 세상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빨강 머리 앤 [Anne with an "E"] 드라마를 상영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라 원작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비슷했다. 고아인 앤이 독신인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커스버트 남매는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원했지만, 착오로 앤이 오게 된다. 수다스럽고 볼품없는 여자아이지만 앤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커스버트 남매는 결국 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게 된다. 앤은 무뚝뚝한 커스버트 남매의 가정에 활기를 찾아주고, 커스버트 남매는 앤의 아픔을 치유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앤의 주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가정을 넘어 그 범위를 넓혀 전개된다. 앤이 사는 에이번리 마을에서 다양한 주제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가령 남성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전형적인 여성성에 대한 반기를 치켜든다던지 인종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대항하는 이야기 등이다.


드라마 빨강 머리 앤은 사회적 약자를 부각하며 다양성 존중이라는 가치를 심어주고 ,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이해와 지지 속에서 치유해가는 과정은 극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극중 인물의 감정에 몰입되었다. 말 못 할 깊은 상처를 간직한 앤은 잔인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지나치게 밝고 명랑했다. 세상이 온통 먹색으로 칠 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에, 앤이 바라보는 세상은 맑고 푸르렀다. 에이번리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점점 앤의 진심을 이해하고 아낀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깨닫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기까지 한다. 에이번리 마을은 갈등이 시작되는 곳이자 해소되는 곳이고 몽고 메리의 바람이 모아진 곳으로 묘사된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방에서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멍하니 보며 웃고 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조커'처럼 꾸역꾸역 몰아치는 슬픈 감정을 집어삼킨 채 어색한 억지웃음과 재미없는 연기를 하면서 훌륭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심이 통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했다가 도리어 자신의 빈 틈을 내비쳐 공격을 받기도 한다. 살아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편견은 살아온 인생만큼 높고 견고해서 쉽게 무너 내리지 않고,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예컨대, 아이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예전 어느 종교집단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며 등장했던 단어의 의미가 아닌,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데,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 않은 어린아이가 이토록 자본논리를 따라 계급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가 소문이 나고,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비단 철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겠거니 하겠지만, 철든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더 살벌한 말이 오가며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팍에 날아든다. 이런 경험을 수차례 겪다 보면 사람들이란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 색안경으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하는 족속들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고, 결국 마음의 문마저 굳게 닫아버린다.



앤이 바라보는 세상은 폭력과 차별이 버젓이 일어나는 곳이었지만, 앤의 머릿속은 늘 즐거운 상상으로 ‘애써’ 가득 차있다. 어쩌면 앤의 상상은 차마 바라보기 힘든 현실의 차가움을 애써 외면하고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이거나, 자신의 아픔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일런지도 모른다. 냉랭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실에 순응하고, 주류에서 비켜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던 우리에게 빨강 머리 앤의 이야기는 상상력의 창고이자 안식처가 된다. 그리곤 빨강 머리 앤이 바로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린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급하게 덮어버리고 자란 어른 아이인 것은 아닐까? 세상의 차가움과 모진 말 견디며 나는 점점 강해지고 성숙했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한 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빨강 머리 앤의 이야기와 같은 해피앤딩을 꿈꾸면서도 영화 '조커'에서 세상에 분노하는 악당 조커의 마음을 공감하며 파괴적인 결말에 오히려 통쾌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한편으로 앤의 따뜻한 이야기를 바라는 것은  해피엔딩을 바라는 우리의 뜨거운 염원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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