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성 Jun 20. 2016

나의 첫 번째 컴퓨터 - IQ2000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의 결정적인 순간들 (1)

중학교 때까지의 장래희망 조사에서는 한결같이 "과학자"라고 썼고,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리는 시간에는 흰색 가운을 입고 플라스크에서 비커로 녹색 용액을 옮기는 나를 그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8퍼센트의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오늘은 그중 나의 첫 번째 컴퓨터 이야기다.


내가 처음으로 썼던 컴퓨터는 대우의 IQ2000이라는 녀석이었다. 

.(사진을 찾아본 순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처음 우리 집에 이 녀석이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도로 치면 1991년. 지금 찾아보니 86~87년도에 출시된 것이라 어쩌면 취학 전일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 녀석이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아마도 아버지께서 교육을 목적으로 사 오신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집이 그렇게 여유 있는 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항상 집에는 거의 최신형 컴퓨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면 아버지가 날 개발자로 키우시려는 야망(?)이 있으셨던 것 같다.

IQ2000의 오른쪽 위를 보면 “팩”을 꼽는 곳이 있는데, 팩을 꽂으면 게임으로 부팅이 되고 팩 없이 부팅을 시키면 베이직 화면이 뜬다. (열 중 아홉은 팩이 꽂혀 있었다)

(이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팩"이라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난 슬프다)

당시에는 베이직이라는 언어가 주로 교육용으로 사용이 되었었는데, 지금의 python, ruby와 같이 interpreter로 줄 단위 해석을 해서 실행을 한다. 줄번호 자체에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IF 문 안에서 분기를 하려면 “GOTO 80”으로 해서 80번째 줄로 이동을 했어야 했다. 

코드를 읽어보고 있다면 당신은 개발자!

몇 년 뒤에 간 컴퓨터 학원에서 베이직 보다 어려운 C라는 언어가 있는데 베이직에서는 프린트를 하려면 한 줄만 쓰면 되는데, C언어에서는 프린트 하나를 하기 위해서 수십 줄을 쳐야 한다고 컴퓨터 선생님을 겁을 주었던 기억도 난다.


이 IQ2000과 함께 따라온 베이직책이 하나 있었는데, 앞부분은 기초를 차근차근 알려주는 부분이었고, 뒷부분은 여러 가지 예제를 기록해 둔 것이었다. 앞부분을 따라가며 배우는 것에는 별 다른 흥미가 없었던 것 같고 뒤편에 있는 예제를 따라 쳐서 결과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코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러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한 줄씩 비교하며 잘못 입력한 부분을 찾아야 했다. 


IQ2000에 대한 기억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당시에도 식당일을 하셨던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시는 동안 나는 베이직 책 뒤편에 있는 비눗방울 예제를 열심히 따라 쳤다. 한 300~500 라인 정도 되는 코드였던 것 같은데 랜덤 크기와 색깔의 비눗방을을 화면에 뿌려주는 코드였다. “엔터”를 딱하고 비눗방울이 그려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샤워를 하고 나오셔서 경대(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계신 어머니를 컴퓨터 앞으로 데려와서 자랑을 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코드를 따라 쳤던 것 같다.


사실 당시 주위에 프로그래밍을 하는 친구도 없었고, 이렇게 혼자 하는 프로그래밍이 재미있을 이유도 별로 없어서 프로그래밍 공부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쉽다! 이때부터 빡세게 했으면 내가 지금 쯤....) 하지만 뭔가 컴퓨터를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고 컴퓨터 경시대회에 나가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어디선가 프로그래밍 대가가 아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리키기 위해 네트워크도 안되고 메모리도 콩알만 한 옛날 컴퓨터를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IQ2000을 가지고 있었으면 아들에게 장난감으로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살짝 아쉽다.


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다.

http://seorenn.blogspot.kr/2012/12/iq-2000.html

http://bbs1.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1210/read?bbsId=G002&itemId=45&articleId=7691

https://ko.wikipedia.org/wiki/MSX

https://namu.wiki/w/MSX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에 다니는 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