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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성 May 30. 2016

스타트업에 다니는 아빠

스타트업에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인 나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 본다. (광화문으로 이사 오기 전 사당 버전이다)


7시

첫째가 깨워 준다. 최근 첫째는 아빠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TV를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빨리 일어난다. 아내와 함께 두 아이의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시킨다. 


9시

집에서 출발해서 회사로 향한다. 조금 여유 있게 집에서 나오면 일부러 5분 정도 더 걸리지만 환승이 없는 2호선을 탄다. 자리에 앉게 되면 노트북을 꺼내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10시 

매일 10시부터 팀의 데일리 미팅이 있다. 항상 오늘의 나의 목표를 이야기 하지만 말한 만큼을 완료하는 날은 흔치 않다. 늘 욕심은 앞서고 할 일은 넘친다.


12시

입사 후 한 달은 회사에 계신 분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이후 한참 동안은 시간이 부족해서 점심을 근처 편의점에서 사 먹었었다. 식사를 마치면 바로 일을 한다. 


20시 

아내에게 8시 30분까지 간다고 이야기해놓고,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시간이 빠듯해진다. 같이 논의를 하다가 혹은 같이 디버깅을 하다가도 12시를 넘긴 신데렐라처럼 빠져나오게 된다. 10번 중에 8번은 뛰어서 퇴근을 한다.  물론 회사에서 집까지 뛰어다닌 것은 아니고 지하철역과 회사 사이를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집 사이를 뛰어다닌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는 테더링을 해두고 회사에서 하던 일을 보통 이어서 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슬랙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마무리 못한 코드를 정리하기도 한다.


20시 30분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아이들 목욕을 시킨다. 첫째를 목욕시키면서 나도 같이 목욕을 한다. 그러면 30분 뒤에 아내는 둘째를 재우러 들어간다. 평일에는 아내와 거의 대화할 시간이 없다. 둘째는 목욕하는 시간과 출퇴근할 때 한 번씩 안아주는 것을 제외하면 평일에는 거의 놀아주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이다. 


21시 

첫째와 놀아준다. 자동차 놀이를 할 때도 있고 책을 읽어 줄 때도 있다. 이제 말도 꽤 늘어서 대화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놀아주는 동안에도 슬랙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중간중간 확인을 하고 답을 한다. 


22시 

첫째와 같이 잠자리에 든다. 보통 20분 정도면 잠이 든다. 아들이 잠든 것 같으면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쓰고 웹툰을 보거나 페북을 하며 10분 정도를 논다. 푹 잠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간혹 빨리 나오려다가 아들에게 “아빠. 어디가?” 라며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 전날 늦게 까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 경우에는 첫째보다 먼저 잠드는 경우도 있다. 


22시 30분

간단한 집안일을 한다. 거실 정리를 간단하게 해두고 국을 끓이거나 한 그릇 요리들을 준비한다. 


23시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다. 회사에 급한일이 있거나 테스트해봐야 할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 회사일을 한다. 보통은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쓴다. 대부분 컴퓨터를 쓰게 되기 때문에 슬랙을 통해서 회사 업무에 대한 의견을 내거나 회사 사람들과 시답잖은 채팅을 하기도 한다.


1시 

보통 1시에서 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이런 식의 생활을 8퍼센트에 입사한 후 6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이 일과에서 벗어난 것은 회사 회식을 포함하고도 손꼽을 정도다. 개인적인 약속은 단 한 번도 잡지 않았다. 모임에 초청해 주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회사 동료들과도 따로 술자리를 만들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데, 그런 기회 또한 거의 없었다.

큰 빈틈없이 팍팍하게 살아간다.  CTO와 가장 양쪽 모두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니 삶에 여유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입사 초반에는 회사 내에서 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서 잠을 줄였었다.

(회사에서 준비해준 아빠와 아들의 커플 티셔츠)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이 회사에 가있다 보니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대우도 좋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던 전 직장을 떠나서 내게 많은 곳을 요구하는 곳으로 옮겨 왔다. 이 결정이 나를 위한 것인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가족의 행복을 양보받았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일이 머리에서 쉬이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퍼센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경쟁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 쏟고 있을 거다. 바쁜 일이 있으면 회사에서 자면서 일을 할 수도 있을 테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주말에도 나와 일을 할 수도 있을 거다. 내가 결혼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퇴근 한 이후에도 전우들은 회사에 남아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희생에 기대어 성공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스타트업이라는 선택을 한 만큼 그 선택을 옳게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만이 남아 있다. 조금 더 불태워서 회사일을 하고 싶지만 시간의 분배 면에서 보면 지금 이 정도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질적인 개선이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단 하나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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