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오랜만에 모교에 들렀다. 몰입캠프에서 1시간 반짜리 강연을 하게 되었다. 강연을 하는 것 보다 모교에 갈 핑계(?)가 생겼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택시에 내려 정문을 지날 때부터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팔딱팔딱 뛰던 나의 20대 초반을 보낸 이 곳.
택시에서 내려 동아리방까지 걸었다. 3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두리번두리번 할 때마다 15년 전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참 신기하다. 15년전 기억이 난다는 것이.
강연을 마치고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15년 전 기억을 글로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잊혀지기 전에. 택시를 내렸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동아리 방을 향해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택시 정류장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같은 조 선배들이 뒤풀이를 한답시고 우리를 태워서 피자헛에 가곤 했다. 그때에는 피자헛 가는 게 왜 그렇게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지금 학부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목욕탕 타일의 기계공학동도 옷을 갈아입었다. 학부 운동장은 허리케인배 축구대회로 기억이 남아 있다. 나름 승리를 위해 진지했다.
좌측으로는 가동, 나동, 아름관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수업시간 근처가 되면 학생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리고 벚꽃이 아주 예쁘게 피는 길이기도 하다. 가, 나동은 주로 저학년 때 썼다. 그래서 이 길을 보니 1학년 때 방을 같이 썼던 재욱이와 성원이가 생각난다. 이 길의 끝에는 아름관이 있다. 아름관 앞에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늘 볼 수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철조망에서 야식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쓰레빠에 후드티를 입고.
학부식당 앞부터 아름관까지의 길에는 빈 공간마다 자전거가 있었다. 지금도 꽤 많다. 생각해 보면 엔드리스로드의 오르막길을 어떻게 올라왔나 싶은데, 여자 친구를 태우고도 잘 올라왔던 것 같다. 지금도 할 수 있으려나.
학부 식당에서 밥 먹은 것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맛이 없었지 아마. 카페테리아였던 것 같은데 뭔가 비싼 우유가 항상 메뉴 중에 있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 우유를 가져와서 먹으면 조금 사치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학부 식당에서는 오후 타임에 간식을 팔았다. 라면 말고도 뭔가 좋아하는 메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양탕 비슷한 맛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학생회관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학복위 당구장이 보인다. 학복위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본다. 당구장을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여름방학에 동방에 앉아 있으면 형들이 종종 노래를 부르다가 당구장에 간다고 했던 것 같다. 왠지 상원이 형이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뒤돌아 보니 태울관이 보인다. 우리가 봄 공연을 하던 곳. 하지만 공연 보다는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서 리허설을 하던 기억이 더 난다. 이곳 1층에 "구드 프랑스"라는 식당이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 사제 식당이 들어오는 것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름과 걸맞지 않게 "돈부리"와 "감자 푸틴"을 팔았다. 여름 방학 때 형호형, 재훈이와 이곳에서 뮤직벅스라는 이름으로 식당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경쟁자는 스타 방송이었다.
학교에서 생활비는 우체국 통장으로 들어왔던 것 같다. 한 달에 15만 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생존에는 충분했지만 술 마시고 후배들 보쌈을 사주려면 과외를 좀 했어야 했다. 보쌈 사주는 선배는 특별한 선배다. 지금으로 치면 소고기 사주는 선배다.
요즘에는 뭔가 행사가 많은 모양이다. 예전에는 동아리에 관련된 것들이 주로 붙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인데, 외부 행사들이 꽤 많이 보인다. 창업/스타트업에 관련된 것들도 여기저기에 보인다.
나는 이곳에서 도서관 쪽으로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보통은 좌회전을 해서 동방으로 간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항상 이 길을 통해서 도서관 쪽으로 갔다. 학부 교양 수업을 듣는 곳까지 지붕이 계속 있어서 거의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역시나 오늘도 좌회전을 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1층 매점이 나오는 곳이다. 이곳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곳이었다. 요즘에도 카이스트에 고양이들이 많이 살려나. 공연 연습 때가 되면 좌측에는 밴드의 악기, 보컬 소리, 합창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서관 옆인데 참 시끄러웠구나 싶다. 그리고 공연 연습을 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곳도 이곳이었다.
매점은 좌측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측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첫 번째 봄 공연은 매점에서 했었다. 매점에서 참깨라면과 작은 김치를 하나 사서 내려가면 보통 형호형이 동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언제 붙은 것이려나. 우리가 있을 때의 동아리들이다. 직접 내려가 보니 동방들이 바뀐 것으로 보아 최신은 아닌 가 보다. 그래도 꽤 많은 동아리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 2층 다용도실은 '체크'를 할 때 유용한 곳이다. 동방은 정말 소리가 울리지 않아서 노래를 불러보면 좌절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연습을 하다가 선배들이 칭찬을 좀 해줘야겠다 싶으면 다용도 실로 자리를 옮겨서 연습을 하곤 했다. 합창을 하면서 손에 꼽히게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다용도실에서의 경험이다. (동틀 무렵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득음"을 위한 공간이 보인다. 보통 개인 연습을 할 때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밴드 동아리 친구들도 이곳에서 메트로놈을 켜 두고 패드를 두드리곤 했다. 동방에 수재가 났어서 그때 젖은 기타 케이스들을 저기 던져두었나 보다. 이 장소는 석환이 형이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
우리가 있을 때에도 뮤즈와 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밴드 동아리였던 것 같다. 지수, 민우를 따라 옆방인 인피니트방도 가보고 승엽이를 따라 뮤즈 동아리방도 가봤던 것 같다. 공연 기간이 되면 타오르는 장소다.
지금은 엠프가 쌓여 있는 이곳은 원래는 맥주 박스의 위치다. 처음에 정모를 할 때 선배들이 맥주를 짝으로 시키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사람이 50명씩 모이는데 짝으로 시켜야지.. 먹은 맥주 공병을 박스로 쌓아두면 다음 맥주를 시킬 때 가져가셨던 것 같다. 비밀번호는 15년 전 그것이다. 왜.. 안 바꾸는 것이냐.
당시에는 기타대가 반대쪽에 있었고, 3/4 정도는 장판이 깔려 있었다. 보통은 안쪽으로 잘 들어가지는 않고 바깥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기타를 치고 놀았다. 배기형은 늘 고음에 도전했었다. 공연 연습을 할 때, 술 마실 때, 혹은 혼자 놀고 싶을 때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타를 치곤 했다. 동방을 둘러보니 우리 때 있었던 타악기들이 보인다. 우리 때에도 한 번도 쓰지 않은 큰북도 여전히 있는 것 같고.
짐을 풀고 기타를 하나 골라 들었다. 예전에는 선호하는 기타가 순서대로 있었는데 잘 모르니, 손 안아프고 대충 조율이 맞는것으로 골라 집었다.
이 책은 메소책이라고 부른다. 00학번 부회장인 메소누나가 "Meso"라고 써두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것은 진품(?)은 아니고 내가 한 7~8년 전에 개인적으로 사두었던 책이다. 내가 좋아하던 곡이 많이 들어다. 사실 오늘 동방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 보고 싶어서 책가방에 넣어왔다.
15살은 어린 후배들이 오기 전에 어서 노래를 불러야겠다. 기타 운지를 하는 손가락 끝이 좀 아프긴 하겠지만 즐겁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정도의 반주는 아직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