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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성 May 29. 2016

풀하우스

8퍼센트 이사

아래 글은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옮긴 것이다. 8퍼센트에 관련된 글들은 하나씩 옮겨 오려고 한다. 


지난 몇 달 간의 8퍼센트 사무실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 보자면 이렇다.

"저 오늘 입사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아아! 또 누가 들어오는 거야?"

오늘은 입사 후에 이사를 가기까지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사당을 떠나는 기념으로.

“우리 어디로 이사 가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난해 11월 초 입사 날 점심때의 대화로 기억한다. 이미 회사에 여유 자리가 2~3개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회사의 성장에 맞춰 구성원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가 15명 정도였는데 이미 사무실에는 회의실이 없었다. 내부 미팅은 한쪽 구석에 서서 모두가 들리는 회의를 했고, 외부 미팅은 밖에 있는 카페를 활용해야 했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이렇게 테라스에서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매번 한 분 한 분이 8퍼센트 배에 올라타실 때마다 “새로 오시는 분은 어디에 앉아요?”가 기존 멤버들의 고민이었다. 곧 개발팀에 두 분이 더 들어오시게 되었고, 사치스럽게(?) 넓었던 탕비실이 없어졌다. 탕비실이 있던 방에 책상을 양쪽으로 붙이고 앉았다. 안쪽에 앉은 사람은 바깥에 앉은 사람의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무려 비행기 좌석처럼! 

(양쪽에 사람이 앉으면 지나갈 수가 없다. 사진에서 보이진 않지만 내 자리 옆에 정수기가 있어서,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다음으로 공용공간이 좁아졌다. 공용공간과 업무공간을 구분하고 있던 책장을 당기고 책상을 한 쌍 더 넣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사실 공용공간이 아닌 통로라고 불러야 한다. 이 통로에 있는 화이트보드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통과하지 않으면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소파나 칠판들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복잡해 보이지만 책장 뒤에 절반의 사람이 더 있다. 전체 미팅 때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하면 참여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대표님이 자리를 빼고 소파에 앉아 일하시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 정도 되자 대표님이 직원들을 불러 모아 공지를 할 때마다 

“오! 이번에는 이사 발표인가?” 
“오? 진짜 진짜?"

라며 기대를 했으나 그날이 쉽게 오지는 않더라. 사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이사 이야기를 꺼내며 대표님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사진들을 슬랙에 올렸다.

(실제로 8퍼센트가 광화문 MS가 있는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원우님의 이 압박 글은 성지가 되었다)

네 번째로는 옥탑방에 살고 있던 디자이너 해원님이 쫓겨났다. 이케아에서 볼 수 있는 쇼룸처럼 이쁘게 집을 꾸며놓고 살고 있었는데, 짐을 빼고 책상과 의자를 세팅했다. 이때부터 개발팀은 제비뽑기를 통한 순환근무제가 시작되었다. 한 주에 2명씩 번갈아 가며 옥탑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릴리즈를 한번 하고 나면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6층 사람들은 옥탑방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밥을 먹으러 가버린다.)

이렇게 26명의 직원이 좁은 사무실에 끼어서 살게 되었다. 다른 것은 그래도 참을 만 한데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15명일 때에도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가이드라인을 따라 화장실을 써야 했었다. 그런데 무려 26명이 화장실 한 개를 쓰다 보니, 80%의 확률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으면 다른 층의 화장실을 몰래 사용해야 한다. 한층 아래에는 치과 화장실이 있는데 치과의 카운터에 앉아 계신 간호사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마치 수박 서리하다 걸린 것처럼. 그리고 2층을 더 내려가면 이비인후과 화장실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회사 동료를 종종 만나곤 했다는 슬픈 사실. 

(아아. 열리지 않는 문이여)

대표님이 이사 발표를 하면서 “넓고 좋은 화장실이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다들 환호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마려울 때 쌀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이렇게 좁은 곳에서 북적북적하며 불편하게 살았지만 다들 시간이 지나면 이때가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당역 근처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 누군가와 회사 다니는 고충을 이야기했던 옥상 어딘가,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던 화이트보드, 누군가가 웃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슬며시 웃음 짓던 그 상황까지. 이 모든 것들을 남기고 우리는 다음 단계로 간다.  안녕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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