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i훈 Aug 09. 2019

글 쓰기

기억여행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나 역시 글과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작가들의 은은한 내면에서 비롯된 말인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작가가 될 사람은 따로 있지’라는 일종의 선민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학을 가까이하고 펜을 잡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들과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지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곧 거울 앞에 서는 일이었다.      


경험에 착안한 글쓰기에 신중을 기하다 보면, 내면과의 대화는 종을 울리는 법이 없다. 옷을 하나씩 벗기다 못해 속살까지 파고들다가 종국에는 장기들까지 마주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숙주를 좀먹는 기생충처럼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던 그들과의 조우는 간혹 매스꺼움을 동반하기도 했다. 숱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관습적 사고들이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을 양산하고 차별을 용인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글을 쓰다 보면 오늘의 내 행동 하나하나에도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고 그냥 그것만으로도 슬프고 아플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우울해질 때가 잦다. 성찰을 하게 되는 지점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구조에 의해 학습되어 자란 내 모습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그런 지점에 다다르면.        


기억여행


며칠 전 친구 J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유독 공허했다. J의 직장생활 고충만 잔뜩 들어주고 과연 나는 무얼 해소하고 왔는가. 직장인에게 기대고 싶은 취준생의 바람은 그날도 바람처럼 지나만 갔다. 현실은 남루한데도 외려 타인 앞에서는 고고한 척하며 고충을 털어놓지 못하는 나에게 회의감이 무릇 시리던 찰나였다. 나는 왜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가. 아파도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지 모종의 억울함을 빈정대고 싶어 글을 쓰다가 약 20년 전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부모님에게 첫 번째 이혼통보를 받던 날, 그때의 나를 깨웠다.

         

‘이혼은 불행한 일’이라는 관습적 사고에 망치를 들이댄 지는 꽤 오래됐지만, 내겐 여전히 ‘가슴은 아픈 일’이다. 엄마에겐 문고리보다 단단했던 아빠라는 존재와 아빠에겐 자신의 손보다 편안했던 엄마 손길의 증발이 곧 서로에게 이득일지 손해일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저 아들인 나에겐 걱정거리였다. 서로의 결핍을 얼마나 채워나가며 살고 있는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궁금하다. 담담한 척하려 하지만 그게 혹시나 나마저 엄마와 아빠에게 등 돌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들인 나에게 부모의 이혼은 그렇다. 그저 불행한 일이 아니라며 진일보한 문화 행태의 잣대만 들이대기엔 부모자녀 간의 감정 고리는 억세다.   

   

자식을 위해 이혼을 참는 부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부모의 기후를 살펴야 하는 자녀. 사실 이혼보다 아픈 일은 그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을 홀로 타야 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 이혼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10대 초의 나는 세상이 무너진다는 느낌을 배웠다. 모든 게 끝나버릴 듯한 생각에 부모님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온몸으로 울어댔다. 당시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지 않았지만, 나는 꽤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내가 잘 커야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주문을 어디선가 내려받았고, 주문대로 나는 살았다.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내보이며 서로의 표정을 살폈고, 매일 서로의 기운을 감지해내야 했다. 밥상 앞에서는 대화의 연결고리를 엮어내느라 바빴다. 나의 힘듦은 부모님의 미세한 표정 변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녔다.      


그때 부모님의 표정을 살폈던 예민함의 촉수가 오늘의 내 안에도 살아 있었던 것일까. 타인의 고통을 포착하면 내 아픔을 감추게 되는 내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갔다. 내 이야기를 하다가도 ‘상대방도 분명히 아플 텐데’라는 생각에 말을 아끼게 되거나 귀를 열어주곤 하는 행동들은 그때의 나와 꽤 닮아 있었다. 물론 화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청자 모델이다. J에게 나는 좋은 친구로서,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가끔은 ‘너는 왜 힘든 얘기를 안 하냐’며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는 서운함을 상대방이 안아야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내 모습을 빚어준 그때의 기억들을 긍정하기엔 당시의 나는 분명히 아팠고 그것이 지금의 공허함을 만들어냈다는 추측은 다시금 세상에 응답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요청했다. 어떤 변화를 동반할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처럼 무의식적인 행동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기억여행이 그리 신나는 일만은 아닐 수 있지만 나를 알아가는 심오한 과정이 될 수 있다. 과거 특정한 사건들의 축적에 의해 내재된 지금의 속성들에 대해 사유하고 통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정환경이나 사회구조에 의해 은밀히 습득된 것이라면 더욱더 의심하고 재정립하려 한다. 조금이라도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에서다. 그 시작이 읽고 쓰는 일이라 믿는다. 일기는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여적>

사실 오늘 글은 지인이 추천해준 책에서 일부 영감을 얻었다. 이혼을 ‘당한’ 아이들은 왜 주목해주지 않느냐고 빈정거리고도 싶었다. 물론 책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고 저자조차 부모의 입장에서 서술했지만 아이들의 고통, 이를테면 과거 나의 아픔을 꽤나 잘 진단했다. ‘너 때문에 참는다’는 말이 자식에게 ‘나라도 잘 살아야지’라는 식의 장기채무를 떠안게 할 수 있다는 걸 저자는 지적했다. 나는 저자의 통찰을 빌려 ‘이혼’이라는 행위에 주체를 하나 더 포함해보고도 싶었다. 자녀가 아플 수 있는 건 이혼 후의 삶만이 아님을. 그 과정을 겪은 아이들 또한 부모만큼 아파왔음을. 그렇다면 ‘이혼은 불행한 일이 아니야’보다는 차라리 ‘결혼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있다’라는 말이 타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혼을 생각하는 부모 간에도 약자가 있지만 그 밑에도 약자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해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