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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훈 Sep 30. 2019

이동현의 은퇴

Don't cry, Rocket  

2002년 11월. 마라톤 대회를 마치고 고깃집에서 코치선생님과 단체 회식을 했다. 고기를 먹다 말고 나는 혼자서 중앙홀로 나와 부리나케 TV 앞에 앉았다. LG트윈스와 삼성라이온스 한국시리즈 6차전. 야생마 이상훈이 9회에 올라와 이승엽에게 동점홈런, 마해영에게 끝내기 역전홈런을 허용했다. 그게 내 머리에 남은 처음이자 마지막 LG의 한국시리즈였다. 그땐 몰랐다. 그게 마지막인 줄.    

 

경북 출신이 서울 연고 LG트윈스를 응원한다는 건, 공간적 모순에 가까웠다. 대구경북 연고의 삼성라이온스 경기를 아버지가 시청할 때면, 나는 아버지가 눈을 잠시 돌리는 사이 LG트윈스 경기로 채널을 돌리곤 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내게 LG트윈스의 팬은 브라운관 안에만 존재했다. 서울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지방 촌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손 모아 승리를 기원하고, 짜릿한 역전승에 전율을 만끽하며 평소 메말랐던 눈을 적시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내게 잠실운동장은 성역이었다. 유광점퍼는 승복이었고, 노란 수건은 십자가였고, 어깨동무하며 부르는 ‘승리의 노래’ 찬송가였으리라. 상경한 뒤로는 마음껏 그 꿈을 누렸다.     

 

2019년 9월 29일, LG트윈스에 인대를 바친 ‘롸켓’ 이동현 선수가 은퇴를 했다. LG우승에 마지막 남은 인대를 바치지 못한 게 한이라는 그에게 팬들은 함성으로 위로했다. 잠실운동장 1루 외야석 벽면에 유니폼을 걸진 못했지만 (영구결번이라고 한다. 팀을 위한 헌신과 뛰어난 성적 그리고 팬들의 사랑을 모두 충족한 선수에게만 부여한다. 그 선수가 달고 뛰었던 번호는 영구적으로 그의 것이 된다. 이동현은 잦은 수술로 인해 최근 5년 동안 재활하느라 경기를 많이 나서지 못했기에 ‘뛰어난 성적’엔 못 미쳐 영구결번까진 오르지 못했다.) 팀을 위한 헌신만 놓고 보면 그와 팬들이 왜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어느 팀의 팬들이나 자팀을 사랑하고 미화하며 욕구를 투사하기 마련이다. LG트윈스 팬들에게도 LG는 애증이다. (LG팬들의 팬심은 유별나다고 자랑하고 싶지만 팬의 ‘자팀 미화 본성’이라고 제쳐두겠다.) 사랑해서 미워하고, 미워하다 사랑한다. 야구도 잘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넓고 두터운 팬층까지 보유했던 황금기(90년대 초중반)를 뒤로하고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동안에도 팬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LG팬은 도대체 왜 하는 거냐”라는 타팀팬들의 온갖 조롱을 감내해내야 했다. 그럴수록 팬들은 잘 나갔던 그때를 회상하며 잠실운동장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응시했다. 그것이 극성으로 치달을 땐, 정치처럼 청문회를 열어 선수들을 질타하며 지독한 참회와 반성을 강요했다. 퇴근길을 가로막으며 온갖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LG트윈스 선수들은 입을 열지 못했고, 고개만 숙인 채 뒤로는 눈물을 훔쳤다.      


팬들의 극성에 어떤 선수들은 이적을 하기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중에도 몇몇 선수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자신 또한 LG트윈스를 사랑하고, 팬들이 없는 한 자신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란다. 팀 성적 하락을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이를 악물고 재기를 노렸다. 2013년 팬들의 함성과 선수들의 피와 땀이 모여 마침내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뜨거운 눈물을 나눴다. 그중 한 명이 이동현이다. 큰 덩치에 눈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았던 야생적인 그의 얼굴에 평소의 땀 대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팬들은 안다. 그가 왜 저렇게 울어댔는지.      


그가 다시 울었다. 이제는 다시 오를 수 없는 마운드를 보며 더그아웃 뒤에서 홀로 눈물을 훔쳤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자신의 수고에 대한 기억들이 아스라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뿐이었을까. 팬들도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LG에 헌신한) 이동현은 까지 말자”는 LG팬들의 공식도 추억으로 남게 됐으니 말이다. 이동현이 ‘진짜’ 마운드를 내려와 경기장을 떠날 때까지 팬들은 “이동현”을 연호했고 이동현은 이동현답게 떠났다.      


누군가 우상은 허상이라고 했다. 우상은 우상일 뿐,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상을 우상화해주는 소분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그는 나를 팬이라고 불러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우상이라 말하고 싶다.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누구보다 성실히 노력한 자신의 수고에 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그리고 투수 이동현을 만들어준 사람은 가족과 주변 동료, 팬들임을 잊지 않은 그 덕분에 나는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됐으니 말이다. 글에 진심을 담아 고백하며 시험일정으로 직관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고맙습니다, Rocket.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동현 선수의 은퇴에 반응한 감정과 추억을 나열해보는 데서 시작했던 글이 이렇게 길어지고 오그라들지 몰랐는데, 내년에 박용택이 은퇴할 땐 어떨까. 글이나 쓸 수 있을까. 이병규, 이동현 선수가 가고 마지막 우상, 박용택만 남았다.       


<출처> LG트윈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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