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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

생각을 멈추면 행복이 보일 수도 있다

by 카오스 혜영

2022년.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딱 30년이 되는 해이면서 한 살이 줄어드는 만 나이로 쳐도 내 나이 5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는 해이다. 이렇듯 작지 않은 숫자의 무게를 이고 있는 이 해 2022년 벽두에 나는 또 하나의 일을 치르고야 말았다.

그저 막연하게 꿈꾸듯 그려온지는 제법 여러 해가 된 일이다. 나의 공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따뜻한 커피 한잔 내려서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 입버릇처럼 돌림노래처럼 언젠가부터 되뇌고 또 되뇌던 이 일이 드디어 꿈에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작은 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멈춰버린 일상이 되풀이되던 중 2021년이 저물었으며 2022년을 시작하면서 문득 ‘이제부터는 생각만 하면서 살지 말자’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만 해온 일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며, 다행히 여기에 기꺼이 동참해준 좋은 친구들까지 있어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되었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진행과정에서의 어느 한 부분도 수월하게 넘어가지는 것이 없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는 것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하여 온 동네 지하란 지하는 다 뒤지고 다녀야 했으며, 간신히 장소를 구하고 나서도 내부 방음공사며 악기 및 집기 구매며 설치 등등 어느 하나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포함하여 함께 거사를 꾸민 나머지 두 친구도 이런 분야에 전혀 전문적인 지식도 경험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들이었으며 그저 함께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동분서주하며 고행에 동참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간이 하나하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하면서 할 일은 점점 많아졌으며 몸은 망가져 어느 날은 자면서도 앓는 소리를 내야 할 정도가 되었는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몸의 통증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들이 꿈꾸던 공간은 거의 완성이 되었다. 좋아하는 악기 -드럼 및 피아노- 는 맘껏 연주할 수 있으며 원하는 책도 맘껏 읽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따뜻하거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실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을 주로 하며 산다. 나도 지난 3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노동의 소외니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니 하는 학자연한 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존을 위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 시절을 살아내야 하는 내 인생의 몫이었으니까. 그러나 앞으로의 나는 해야만 하는 일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조금씩 아니 주로 하면서 살아 보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 보유했던 뇌세포 중 적어도 수십만 개를 잃어버렸을 지금 무엇이 되었든 배움의 길은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근골격계에 질환이 생긴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 나이에 체력으로 배움을 뒷받침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조금 느리면 어떻고 많이 못하면 또 무엇이 대수란 말인가. 함께 하면 좋은 사람들과 영원히 미완성일 공간과 우리를 기다려줄 시간을 천천히 채워나가면 그만인 것을. 남아있는 내 삶에 더 이상 목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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