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지만 일단 시작하기!!!!
2021년 12월 31일이 지나고 2022년 1월 1일이 되었다. 57년을 사는 동안 글자를 익히고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 이후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한 가지 정도는 했었다. 비록 대단한 이벤트는 없을지라도 하다못해 텔레비전을 통해 제야의 종 타종을 지켜본다던가 초침이 12시를 지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잠이 든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일 지언정 다른 날과 다른 무엇이 한 가지는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의 12월 31일과 올해의 1월 1일에는 평소와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직장에서 매년 업무를 마감하면서 의례적으로 실시하던 종무식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동료들과는 평소와 같은 인사말을 나누고 퇴근했으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귀가하여 먹고 씻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인 1월 1일은 여타 다른 공휴일과 같이 점심 나절이 다 된 시간에 일어나 또 먹고 씻고 빈둥거렸을 뿐이다. 지난 2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수십 번의 경험으로 어차피 새해맞이 이벤트나 결심 등이 아무 의미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일까.
외연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어느 귀퉁이 태양계에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1년이라는 시간은 무한에 가까운 지구의 공전 회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우리의 선조들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어렵게 계산하여 그 기준으로 날과 달을 가르고 해를 나누어 수천 년을 살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중 특별한 날에 아무것도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특별한 이틀을 보낸 지금(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월 2일이다) 약간의 반성과 함께 더 늦기 전 그래도 다른 날과 다른 생각을 하나라도 한 연후에 2022년을 온전히 맞으려 한다.
몇 년 전 보았던 “해운대”라는 영화에서 유난히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대사가 있었다. 극 중 젊은 남녀가 나눈 대화중 하나로 “오후 2시는 매우 애매한 시간”이라는 거였는데, 왜냐하면 “오후 2시는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그렇다고 마무리하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공감을 했었는데 오늘 문득 그 대사를 돌이켜 보니 지금의 내 인생시계가 그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정도의 세대라면 내 나이가 오후 7시라면 몰라도 감히 오후 2시 운운할 수는 없었겠으나 이 시대의 기대수명으로 미루어 보다면 가능한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숫자로 표현한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애매한”, “시작하기에도 마무리하기에도 어정쩡한” 이런 부분이 딱 지금의 내 나이를 표현한 것 같아 그 대사가 이 시점에 떠오른 건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 - 비록 그것이 지구가 또다시 태양을 도는 무한반복의 한 시점일지라도 - 은 무엇인가 새로움과 함께 출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이미 오후 2시가 넘어버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지난 시절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면서 보내야 하는 것일까. 시작해야 할까? 마무리해야 할까? 이렇게 저렇게 어정쩡하게 있어야 하나?
어정쩡하게 있다 보면 시간을 또다시 흘러갈 것이며 그렇게 2시는 3시가 되고 4시가 될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떨어지면 그때는 무엇을 하기에도 불가능한 시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전에 무엇이 되었든 시작하는 것. 이것으로 지난 이틀간의 무념과 무의미에 대한 사죄를 대신하려 한다. 왜냐하면 오후 2시는 애매하고 어정쩡한 시간이라고 하였지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시작한 후 온전한 실행에 걸리는 시간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부족하여 완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작에서 오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무언가를 시작함에 생각에서 실행에 옮기는 시간을 최소화하여 시간을 절약할 것. 오후 2시의 나에겐 쓸모없는 생각만으로 허비해도 되는 시간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몇십 년 전 내가 기억하는 내 삶 속의 과거는 지금 오전 8시나 9시를 지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역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몇십 년이 지나면 다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역사에 살고 있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고 생생한 지금 숨 쉬고 있는 내 공간과 시간 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