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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 이야기

#5 메스티아 - 우쉬굴리(MESTIA - USHGULI)

by 카오스 혜영

다소 생소한 이름의 메스티아와 우쉬굴리는 조지아의 북쪽 코카서스 산맥을 이고 있는,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곳이다. 흔히들 “조지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미국의 조지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조지아는 구소련 연방 시절 “그루지아”라고 불리다 조지아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나라를 일컬음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국인 터키나 아르메니아가 이슬람의 영향 아래 있는 것과는 달리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로 대다수 국민들이 조지아 정교회를 믿는다. 국기에도 십자가가 다섯 개나 들어가 있고 거의 모든 마을의 높은 언덕 위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상점이나 택시의 운전석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종교생활을 중요시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IMG_0656.JPG 카즈베기에 있는 성삼위일체 성당. 해발 이천미터도 넘는다고 하지요

또한 조지아는 인류 최초의 와인 발생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웬만한 집에는 포도넝쿨이 대문에 걸려있다. 와인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고 하니 안 마셔 볼 수 없는 일. 명성 그대로 레스토랑이나 와이너리에서 마셨던 와인맛도 훌륭했으나 가장 맛있었던 와인은 여행 중 어느 하루 묵었던 민박집의 인심 좋은 주인장 할아버지께서 지하실에 고이 묻어 두었던 와인 항아리를 꺼내 커다란 잔에 따라주신 와인이었다. 와인 맛과 함께 더불어 떠오르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 손님들만 오면 저렇게 술을 꺼내 밤새 놀고 마신다며 살짝 눈을 흘기시던 주인장 할머니의 온화한 미소와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잊을 수 없다.

이렇듯 정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나라는 곳곳에 소박한 중세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니 그중에서도 단 한 곳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메스티아와 우쉬굴리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다른 도시(바투미 -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에서 메스티아까지 이동하는데 렌터카로 네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했고 우쉬굴리는 다시 메스티아에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더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운전기술이 세계 최고라고들 하는데 조지아에서의 운전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된다. 일단 어디를 가든 잘 정비된 하이웨이는 별로 없으며 거의 모든 국도는 편도 1차선으로 앞 차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중앙선을 넘나들어야 한다.

게다가 도로에는 수시로 소떼를 비롯 때론 말, 돼지, 오리 등등 각종 가축들이 자기 집인양 넘나드는 통에 그때마다 그들을 기다리거나 피해서 가는 수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럼에도 어느 운전자 하나 경적을 울리거나 자유로운(?) 가축들을 쫓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게다가 해발 이천 미터도 더 되는 코카서스의 고원지대인 메스티아,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한쪽은 높다란 산비탈 또 다른 쪽은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낭떠러지인데 게다가 비포장이기까지 한 이런 길을 몇 시간 달리다 보니 도착했을 무렵에는 골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살 떨리는 운전에도 유턴 없이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대자연의 위엄과 아름다움 때문이었으리라. 저 멀리 설산을 이고 병풍처럼 펼쳐진 해발 사천 미터의 코카서스와 설산과 빙하에서 발원하여 계곡을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 신비한 빛깔의 석회수들. 높은 고도 탓에 키 큰 나무는 없으나 세월의 신비를 담고 있는 듯한 키 작은 나무들과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야생화들. 그 사이사이 한 무더기씩 툭툭 중세에서 방금 날아온 것 같은 마을들. 그리고 미소가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까지.... 이 모든 것에 힘입어 이끌리듯 메스티아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IMG_3022.JPG 계곡의 물이 두가지 색. 양쪽 지류의 물성분이 달라서라고 하네요

메스티아는 작은 마을이기는 하지만 마을 읍내(?) 중앙에 가면 코카서스 트래킹을 즐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이들로 늘 붐비고 있는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내려고 자기 몸보다도 더 큰 배낭을 아무렇지도 않게 둘러메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에 새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스티아는 그래도 좀 읍내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하면 메스티아에서 한두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우쉬굴리는 그야말로 산촌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카메라 앵글을 어디에다 두고 셔터를 눌러도 그 자체로 엽서가 되고 수채화가 되는 신비를 맛볼 수 있다.

메스티아나 우쉬굴리에서는 집집마다 “꼬쉬키” 라는 구조물이 함께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망루 같기도 하고 굴뚝같기도 한 이 구조물은 중세시대부터 지어진 가옥 구조라고 하는데 외부의 침략이 빈번하여 그에 대비하기 위한 공격 및 방어시설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깡촌중의 깡촌을 누가 어렵게 침략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더랬는데, 여러 지정학적 종교적 이유로 인해 조지아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외적의 침입이 많았다고 하며 심지어 칭기즈칸의 몽골에 패배한 최초의 기독교 세력이었다고 하니 동병의 상련이 느껴짐은 당연한 일이다.

IMG_0739.JPG 집집마다 솟아 있는 굴뚝 같은 것이 꼬쉬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그 집에 천 년 전 거주자의 DNA를 물려받은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가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신비로울 뿐인데, 그래서인가 이곳의 사람들은 정말 시간이 멈춘 듯 다정하고 따뜻하다. 이곳 사람들의 혈통의 뿌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이들의 외모는 앵글로 색슨이나 아리안 같은 흔한 유럽인을 닮아 있다. 우리는 유럽인이라고 하면 흔히 파리지앵이나 런더너 혹은 뉴요커 등 세련되고 약간은 도도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거나(물론 짧은 영어 아니면 바디 랭귀지에 불과하지만) 상점이나 숙소 등에서 소소한 거래를 하다 보면 그들의 수줍은 미소와 친절이 차라리 우리나라의 옛정서에 더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메스티아를 생각하면 압도적인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루를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아기를 업고 문밖까지 배웅해주던 예쁜 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쉬굴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소년의 눈물이다. 첩첩산중 우쉬굴리에는 관광객들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게 하는 관광용 승마 코스가 있는데 손님을 태우고 말을 끄는 일은 주로 어린 소년들이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에게 말을 태워주고 나서 말을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다 그 말의 머리에 제 머리를 부딪쳐 아파서 눈물 글썽하던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년의 모습. 괜찮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한 듯 말고삐를 쥐고 가던, 그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의 눈에 흘러내리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IMG_0742.JPG 말모는 소년들(가운데 아저씨는 관광객 같아요)

중세에서 딱 시간이 멈춘듯한 이 마을에도 언젠간 대다수 문명화된 도시처럼 근대가 들어오고 현대가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는 현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와는 다른 그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 현대가 소년의 파란 눈동자에 눈물은 거두어 가되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미소는 거두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간, 설마 코로나19가 이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까지는 침범하지 않았기를. 코카서스의 영험함으로 전 세계 나쁜 기운까지 다 몰아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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