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3... 북(DRUM)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고적대가 있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 고적대가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학교의 고적대는 관악기 없이 큰북과 작은북, 심벌 등 타악기로만 구성되어 각종 학교 행사 때 멋진 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펼치는 임무를 맡은 일종의 특별활동 동아리였으며 그래서 학교에서 부르는 정식 명칭도 “퍼레이드부”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4학년이 되어서야 입단 자격이 주어지는 이 퍼레이드부는 입단 조건도 까다로워서 일정 기준 이상의 키를 가진 여학생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졌다. 나는 지원을 하고 싶었으나 걸어 다니면서 북을 치면 다리가 아프다는 아버지의 만류에 막혀 졸업 때까지 그저 멀리서 그들의 멋진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첫 번째 좌절 -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처음으로 학교 축제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여중과 여고가 같은 담장 안에 동거를 하고 있어 축제기간에도 중·고등학교가 함께 어우러지곤 했는데 그때 고등학교 언니들로 구성된 밴드 공연을 보게 되었고 그 공연이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라이브 밴드 공연이었던 듯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고등학교 언니들이 들고 나온 밴드 장비들이라는 건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일렉트릭 기타의 음색까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드럼으로 보자면 음악실에서 쓰는 큰북, 작은북, 심벌 등등을 모아서 급조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조잡한 드럼을 멋지게 연주하는 고등학생 언니의 카리스마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나는 초등학교 때 못 이룬 "퍼레이드부"의 한을 풀고자 "밴드부"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이 또한 두 번째의 아버지의 만류로 못하게 되었다. 이번의 이유는 밴드부에 들어가면 타악기만 하는 것이 아닐 텐데 어린 나이에 나팔이라도 불게 되면 폐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 두 번째 좌절 -
이렇게 막내딸의 건강에 대한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 덕분에 두 번의 꿈을 접은 나는 일단 기타라도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마침 그 당시 EBS에 방송되던 클래식 기타 강좌를 보며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게 되자 다시 못다 이룬 드럼에 대한 향수가 찾아왔다. 그러나 건반악기나 기타와 달리 드럼은 악기를 사서 혼자 독학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지 않은가. 하여 온 동네를 뒤져 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드럼 학원의 위치를 파악한 후 다시 한번 허락을 구했으나 이번에도 딸의 건강과 학업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여지없는 반대에 부딪쳐 나의 꿈은 최종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 마지막 좌절 -
여기까지 보면 나의 아버지가 딸의 의견을 무시하는 가부장적 인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건 분명 오해라는 걸 확인해두어야겠다. 나의 아버지는 가장이나 남성의 권위로 자녀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 당시 아버지 중에는 거의 획기적으로 민주적이고 친구 같은 분이셨다. 다만 이런 다소 사소할 수 있는 몇 가지 부분이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 이후로는 누구나 겪는 그 시절 그 나이의 공사다망한 일들로 인하여 밴드니 드럼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꿈은 접고, 아니 아예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덧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 마흔이 되었을 때, 일찍이 공자께서 유혹에 흔들림이 없는 나이라던 하필 그 불혹의 나이가 된 내게 유혹이 찾아올 줄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 선물 같은 유혹이 찾아온 건 직장동료들과의 우연한 술자리 대화에서였다. 대화중에 직장동료의 지인이 우리 직장 근처에 딱 나 같은 중년, 아마추어, 직장인 등을 위한 드럼 동호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걸어서 2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도 쉽사리 용기 내어 가지 못하고 4~5년의 시간을 다시 허송한 뒤에야 겨우 찾아가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소심함과 낯가림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렇듯 오랜 세월을 돌아 기다리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북(Drum)을 처음 만났다. 처음에 드럼을 배우러 가면 대뜸 드럼을 칠 수 없다. 배우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배우러 가는 횟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처음 2~3주 정도는 일명 딱판이라고 부르는 연습대에서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 바로 눈앞에 북이 있으나 감히 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우러러보며 묵묵히 연습대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드럼 세트에 앉아 내 스틱으로 북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인고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북 앞에 앉던 날, 내손으로 두드려 울려대던 그 쿵쾅거리는 북의 울림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공기를 통해 전해져 내 심장을 파고들던 강한 파동과 손끝으로 전달되는 북의 미세한 떨림의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드럼은 여러 가지의 북과 심벌, 하이햇 등으로 구성된 어찌 보면 매우 복잡한 악기이다. 양손으로 북과 심벌을 치는 것은 물론 오른발로는 베이스 드럼을 두드리면서 왼발로는 하이햇 페달도 열심히 밟아 대야 한다. 드럼에도 악보가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드럼에도 악보가 있으며 두 손과 두발의 포지션과 리듬에 따라 각각을 표시하는 음표가 들어가 있으니 악보를 정확히 읽어 두 손과 두발을 동시에 움직여야 멋진 리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드럼은 온몸을 통해 연주되는 악기인 셈이며 이것이 또한 드럼의 매력이기도 하다.
생체기관인 심장이 뛰어야 유기체인 몸이 산다. 심장 같은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인가가 정신에도 있어야 영혼이 살 수 있다. 더 이상 두근거림이 없어질 때 몸도 영혼도 죽어가는 것이다. 북의 울림은 심장의 두근거림과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첫 만남 이후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이 친구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 자네가 굳이 내손을 마다하지 않는 다면 나는 앞으로도 자네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떤가? 나 같은 친구 하나 더 두어도 괜찮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