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테네(ATHENS)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팬데믹으로 인해 1년이 연기되었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개막하였다. 어지러운 시국에 올림픽 개최라는 사건에 대한 각자의 호불호나 가치 판단은 다양할 것이나, 모처럼 TV 화면을 통해서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도시의 뜨거운 여름 공기가 코 끝을 스치는 듯하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 서양 철학의 발상지... 어떤 형태로든 서구의 정치와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살고 있다면 그는 아테네의 세례를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철학도(무엇인가에 홀리듯 이끌려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이러저러한 사유로 전성기 선동렬 방어율과 비슷한 학점을 유지했던 나 같은 사람도 철학도라 불릴 수 있다면)인 나에게 아테네는 청년시절부터 순례를 갈망하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네스코의 심벌이 된, 거의 모든 세계사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꿈에 그리던 파르테논을 보기까지에는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갔으니 그때는 바야흐로 오십을 넘기고도 두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이었다.
아테네 여행의 시작은 단언컨대 태양이었다. 8월 중순, 이 도시의 태양은 가는 데마다 널려있는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늘어뜨리고 미처 어떤 것으로도 가리지 못한 이방인의 목덜미와 종아리를 사정없이 달구어 놓았다. 잔인한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꿈에 그리던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니 눈앞에 나타나는 파르테논.... 그때 나도 모르게 비명처럼 내뱉은 말은 “아! BC5세기” 이 한마디였다. BC5세기,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지어진 이 거대한 신의 집이 온갖 운명의 잔혹함을 견디고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집 앞에서 페리클레스는 시민의 환호를 받았을 것이고, 소크라테스는 신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걱정하며 경계했을 것이며 결국 그러다가 이 도시 어디에선가 독약을 마시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화려했던 신의 집 파르테논은 역사의 부침 속에 결국 “엘긴`s 마블”로 갈기갈기 찢겨나갔으나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성인으로 남아있는 것이겠지.
기원전 500년경 소크라테스, 플라톤, 기타 여러 명의 소피스트들이 거닐었을 법한 플라카 지구는 지금도 여전히 이 도시에서 가장 활기차고 재미있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지붕 사이사이 어디에서는 파르테논이 보이고,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하고 싶은 소박한 노천카페들이 곳곳에서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렇게 이끌려 들어가면 그곳에는 아무렇게나 버무려먹어도 맛있는 그릭 샐러드와 양은 많지 않지만 신선한 씨푸드, 갈증을 해결해주는 프라페가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타이틀을 놓고 볼 때 아테네는 왠지 화려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막상 이 도시에는 화려함이 없다. 있다면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미케네 문명 시대의 금 장신구 정도일까? 파르테논도, 제우스신전도, 디오니소스 극장도, 아고라도 그냥 보면 돌덩이일 뿐이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비슷한 돌덩어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앞에 붙어 있는 현판을 잘 읽어 보아야 이것이 어느 시대에 무엇을 위한 돌덩어리였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른 도시에서라면 어떻게든 이런 돌덩이들에 화려함을 입혀 관광객들을 불어 모으려 했을 것 같은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애써 “호객”하지 않는다. 마치 “우린 문명의 창시자 들이고 저 돌들이 그걸 증명해. 그걸 이해하는 건 너희들의 몫이니 우리가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잖아?”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저잣거리와 같은 일상에서도 다른 관광 도시에 비해 그다지 호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은 그냥 살라면 사고 말라면 마라, 들어와서 먹을래면 먹고 말라면 마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과연 이것은 인류 문명 창시자로서의 고고함일까? 아니면 경제난으로 인한 무력감일까? 어찌 되었든 이들의 이러한 소극적 호객으로 말미암아 수줍은(?) 이방인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좁은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으니 내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도시 중앙에 있는 신타그마 광장 근처였는데 숙소 루프탑에서 보는 파르테논의 야경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그 루프탑에서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돔 지붕을 전경으로 하여 파르테논이 후경으로 보였으니 유일신교의 성전과 다신교의 신전의 묘한 역사의 콜라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신교를 믿던 선조들의 유산으로 돈을 벌어 유일신교의 성전에 헌납하는 후손들의 아이러니랄까.
단 한 번의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고 하루에 15Km에서 20Km를 꼬빡 걸었던 치열했던 3일간의 성지순례... 이제 이도시는 내게 더 이상 성지가 아니다. 숙소에서 아크로폴리스를 간다고 나설 때 거긴 소매치기가 많으니 큰 주머니가 있는 가방은 가지고 가지 말라던 주인장 할아버지의 미소와 근위병 교대식에서 본 멋진 군인 아저씨들이 다시 보고 싶고, 플라카 지구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너무 양이 적어서 아쉬웠던 문어요리와 숙소에서 아침마다 후덕한 아주머니가 부쳐주시던 계란 프라이를 다시 한번 꼭 먹어보고 싶은 내 이웃 같은 곳이다. 그래서 내 청년시절 감히 우러러보기에도 송구했던 이 도시는 이제 아주 오래전 멀리 이사한 동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즐거운 기분으로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그런 도시가 되었으며 다시 가는 그날에도 이 도시는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나를 반겨줄 거라 믿는다.
그렇지만 친구! 환영행사는 너무 뜨겁지 않게 해 주길 바라, 사실 지난번에 너무 뜨거워서 힘들었거든. 그래야 파르테논에서 아테나 여신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