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월 00일에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이 한 줄로 시작된다. 오늘의 인연이 내일은 아닐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급변하는 파도처럼 나아갈 방향을 모른다.
벽, 도시, 그림자, 불완전함. 요즘 내 머릿속에 자리 잡힌 단어들. 나이가 서른 중반에 가까워지면 성격이 저절로 온화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체념에 가까운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수긍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전에는 사소한 감정과 행동 하나하나까지 의미부여를 하고 여러 생각을 하느라 애썼던 시간들이 이제는 다이어트처럼 무게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허술하게 산다. 책방에서 베스트셀러를 모르는 책방의 직원처럼. ‘아차’ 싶을 때 한번 더 찾아보는 마음처럼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언젠가부터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주변엔 나 혼자뿐이고 고요한 공원의 녹음이 짙어 아침을 깨운다.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제법 평범해서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다.
미처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뒤늦은 후회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한 시절일까. 며칠 사이에 야윈 나뭇가지를 보면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간밤에 잘 있다는 꿈의 조우였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저녁이 오면 아침은 온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셋째 철. 가을이 내게 안부를 물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이 잘 아물고 있다는 뜻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