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잎새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어떤 곳은 계절이 더디게 가고 옷차림에도 변화가 없다. 한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음처럼.
파리에서 오베르 쉬르 우와즈까지 차로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일명 ‘고흐 마을’이라고 불리는 조용한 시골이었다. 마지막으로 빈센트 반 고흐가 생에 70일을 보낸 곳. 나는 이곳에서 어떤 감정으로 그를 마주할까.
반 고흐는 70일 기간 동안 무려 75점의 그림을 이 마을에서 남겼고 그의 마지막 순간은 마을에 있는 밀밭이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그의 무덤은 밀밭옆 공동묘지에 있다.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해바라기와 그의 동생 태오와 함께.
밀밭을 지나 마을에서 나오면 반 고흐의 작품으로 만든 기념품샵이 있다. 그곳에서 해바라기 엽서를 사서 수취인 불명으로 썼다.
To. 고흐에게
9살이었어요. 당신의 그림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나요. 제가 살던 시골에도 해바라기가 피었는데 당신의 해바라기는 재의 빛깔과 같았어요. 낭떠러지에 있는 절박한 심정처럼 시들어져 있는 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할까요. 유년시절에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쉬- 밀밭으로부터 바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높은 하늘에 섬광이 비치면서 그의 고독한 내면이 깊숙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미쳐야만 하나의 길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욕심 같은 소리를 하고 오베르 교회 앞에서 기도를 했다(참고로 나는 무교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고 며칠 동안 여행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지금 이 순간만 생각했던 것 같다. 길게 늘어뜨린 빨랫줄처럼 느리게 가는 순간들이 가슴속을 저릿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