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체감한다.
손에 꽉 힘을 줘서 글씨가 삐뚤삐뚤하게 적혔다. 욕심이었던가. 터놓고 말해보자면 그동안에 나는 가지고 싶은 게 참 많았고 무엇이 됐던지 간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다 갈망하는 그것들 말이다. 돈, 명예, 사랑 그런 뜬구름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쫓으면서 내게 주어진 젊음을 비탄했다.
찹 우습고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한동안 나는 그런 몰지각한 과거에 창피해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과 글을 병행하면서 타협할 수 없는 현실의 벽과 꿈, 그리고 불투명한 비전, 그 속에서 이미 정신적인 체력은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달력을 보았더니 어느새 반이 지났다. 처음 1월은 겨울이라 추웠고 5월은 봄이라 그런지 무기력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계속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시인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분은 추위에 약해서 해마다 겨울인 곳을 찾아 여행한다고 하셨다. 그때, 아주 맑은 날씨에 흰 눈이 살포시 내리는 기분이었다. 누가 계절은 사계절이라고 했을까. 그날은 따뜻한 봄날에 흰 눈이 콧잔등에 내려앉는 뜻밖에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