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늑대
봄이 고양이라면 가을은 늑대라고 부르자.
숲이 우거진 자리에 홀로 있는 모습으로, 다리 한쪽을 절뚝이는 마음으로, 자꾸만 가을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며칠째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대체로 비 오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을비만큼은 맘이 너그러운 편이랄까.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뭐든 조용히 정리하기 좋은 계절이 가을이라 그런 것 같다.
예를 들면, 여름내 틀었던 선풍기를 비닐에 넣어 정리한다. 아니면 점퍼나 코트 같은 두꺼운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거나 방청소를 하다가 서랍장에서 옛 물건을 발견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해 금세 날이 어둑해질 때면 별안간 지금이 가을이라고 체감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용히 글을 끄적이며, 접은 페이지를 펴서 책을 읽는 기분이 사뭇 산뜻하다. 가벼운 마음이란 무엇일까. 빗소리에 마음 한 켠 나른해지고 나뭇잎 떨어진 자리마다 발견되는 무연고의 발자국들. 언젠가 우리가 마주했던 길에서 만남을 되뇌곤 했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늑대의 황금빛 눈동자처럼 가을이 고귀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당장은 서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