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으로 살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늘 같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거나 그 무엇도 내가 될 수 없을 때 기댈 곳이라곤 겨우 술, 담배, 커피 그런 것들이 전부가 될 때.
그렇다면 술에 의지하는 삶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끔 오래된 친구들에게 가족 얘기를 꺼내곤 하는데 농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 “나는 술을 안 좋아해서 다행이야. 안 그랬음 삼촌처럼 술에 의지했을 수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촌이 돌아가셨는데 내 기억 속에 있는 삼촌은 두 개의 단어로 표현된다. 술과 책. 삼촌은 누구보다 다정했고 조카를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술에 취해 술주정을 부릴 때면 삼촌이 끔찍할 만큼 싫었다.
그러다 삼촌이 아프다는 소식에 삼촌집에 가면 가장 먼저 보였던 건 다름 아닌 책장이었다. 폴폴 먼지가 쌓여 한낮의 햇빛에도 가늠이 안될 만큼 무수했던 책들. 그로부터 몇 주 후 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그제야 한 사람의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현재 삼촌의 나이가 되었고 삼촌을 닮아 낡은 책 한 권 버리지 못한다. 하루하루 근근이 맨 정신으로부터 삶이란 무엇인지, 그때 삼촌은 무엇을 포기했는지 골골대다 하루는 골방에 틀어 박혀 늙은 노인이 되는 줄 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술은 싫고 괴로운데 의지할 곳을 찾으면 김광석, 김수영, 기형도. 그들은 여전히 소년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들처럼 삼촌 역시 소년의 모습으로 나무 아래 바람을 휘파람 삼아 불고 있겠지.
그러면 나는 침묵보다 안전한 책으로 자간과 간격에 눈을 맞춘다. 방 안의 습도는 자정을 가리키고 나는 울다가 웃다가 이몽에 해롱댄다. 비가 더 쏟아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