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풍과 해프닝

by 이효진


4월이다.

달이 바뀌었다는 것은 서풍으로 부는 바람 또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한동안 나의 봄은 위험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뻥 뚫린 공허에서 불쑥 무지개 같은 것이 바깥으로 쏟아지는 심상이었다. 그러다 주저앉을 것 같아서 거리에 있는 벚꽃도 보지 않고 허리를 꽃꽂이 펴서 곧장 집으로 갔더랬다.


그로부터 다시 3월의 봄, 차가 막히는 아스팔트 도로에도 벌써 여러 색의 꽃들로 가득 찼다. 그러면 잠시 동안 과거와 분리된 채로 모든 일이 까마득하게 지워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스크를 벗고 제법 따듯해진 꽃바람을 코에 가져다 댄다.


산다는 것, 그것은 봄과 같아서 가장 질기고도 끈질긴 생명체 같다. 태동을 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리는 태아처럼, 매해 봄이 오면 삶은 이토록 새롭게 움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른 봄이면 쑥, 냉이 그런 것들이 땅속줄기 마디에서 싹이 나와 곧추자란다.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산이고 들이고 봄나물을 캐던 때가 있었다. 유년시절의 노스탤지어 그런 거쯤은 이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가끔씩 현실이 꿈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때아닌 꽃구경을 하는 것처럼, 올해 이례적으로 벚꽃이 일찍 개회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대체로 봄철의 하늘은 맑은 편이지만 곧 높새바람이 불 것 같다. 지금의 서풍이 차츰 잦아들게 되면 더운 바람이 먹구름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비가 내리고 하나의 사물과 하나의 계절이 사라진다. 봄바람을 타고 한 조각의 기억조차 따라간다. 그것은 전날 밤에 벌어진 단순한 해프닝이었나. 해프닝치곤 그럴듯했다. 이제는 바람이 불어도 뒤돌아 보지 않는다.


비로소 봄, 마주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