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에는 바람만 불었으면 좋겠네.
회오리바람과 티끌 속에서 슬픔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네.
오랜 연인과의 결별, 강아지 무지개다리 건넌 날,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새벽 문자.
언젠간 다 떠날 테지만(나도 그렇고 모두) 정착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처럼 그 언젠가는 잊고 살자는 말이 밥 먹자는 말보다 꺼내기 쉬울 테지만.
‘꽃집을 지나면서도 어떻게 살지 좁은 골목을 앉아서도 어떻게 살지 요 며칠 혼자 하는 말은 이 말뿐이지만 모두 당신으로 살아가리라’ (이병률 시인, 여름 감기)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무해한 존재에 대해 정이 많아서 헤어짐에 아직도 익숙지 않은데. 해 질 녘 퇴근길을 걷다가 문뜩 잊고 지냈던 옛 이름이 떠올라서 사람이란 망각 속에 피고 지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 떡집을 지나가는 길에 인절미를 사야겠다. 살아생전에 할머니가 제일로 좋아했던 것. 그렇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를 추억하는 일이 고작해야 겨우 그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앞으로 어떻게 살지 몰라 정처 없이 헤매던 날들이 결국 당신으로 인해 살아야지 했던 날. 살다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하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당신은 내 곁에서 오래오래 살아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