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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호 Jan 27. 2024

공룡기업이 혁신기업이 되기까지

세계 시총 1위에 복귀한 마이크로소프트 스토리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사는 노키아의 모바일폰과 연관 부서 일체를 무려 8조 원을 주고 인수합니다.  하지만 2년 후, MS는 노키아 인수에 들어간 모든 비용을 회계상 손실 처리합니다.  손실 처리 금액은 애초 인수금액보다 더 큰 10조가 넘는 돈으로, 노키아 인수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이후 MS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윈도우즈 폰 OS도 접습니다.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MS의 굴욕적인 패배 선언의 순간이었습니다.




MS는 PC 시대의 절대강자였습니다.  'MS 윈도우즈'는 PC OS 시장을 거의 독점에 가깝게 점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브라우저, 오피스, 개발 환경까지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PC를 쓸 수 없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의 발표로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에, OS가 주력상품인 MS가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은, 회사의 존망이 위태로운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2010년대에 들어, PC의 사용은 점점 줄어들고 스마트폰의 사용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습관 자체가 바뀌어 버립니다.   스마트폰은 한시도 멀리할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PC는 리포트를 쓴다거나 업무를 할 때만 필요한 기기로 전락했습니다.  모든 것이 PC 중심인 MS의 제품들은 일반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 갔습니다.


급격히 발전하는 첨단 산업인 IT 분야에서는, 아무리 잘 나가는 큰 회사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컴퓨터의 탄생과 함께하고 20세기엔 컴퓨터의 대명사로 불렸던 IBM 같은 회사도 21세기에서는 사람들이게 많이 잊혀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한물간 공룡기업


공룡기업은 어마어마한 덩치의 초 대기업을 말하는 말이지만, IT 업계에서는 그리 칭찬의 말이 아닙니다.  급변하는 IT 산업에서는, 덩치가 큰 대기업일수록 혁신과 속도가 느려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공룡 역시 엄청난 덩치로 한 때 지구를 지배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멸종이 된 존재입니다.  IT업계에서 공룡기업이란, 이러한 공룡처럼 지금은 덩치가 크지만 발전이 없어서 결국에는 도태되어 망해버릴 회사라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습니다.  


닷컴 버블 시기에만 해도 PC 시장을 장악하고 인터넷 환경을 좌지우지하는 MS가 공룡기업 취급을 받기까지는 15년이 안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혁신의 대명사인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모바일 시대의 선두주자인 애플을 합쳐 FAANG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애플은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회사였지만,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화려하게 재기했고, 2012년에는 기업가치 세계 1위의 최고 혁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지난 10년간 (2014~2024) 주가가 가장 크게 오른 빅테크 회사는 FAANG의 회사들이 아니라, 바로 MS였던 것입니다.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바일 시대에서 도태되어 공룡기업 취급을 받던 MS가 어떻게 이 시기에 주가가 가장 크게 오를 수 있었을까요?




2014년, MS는 CEO를 바꿉니다.   '빌 게이츠' 이후 14년간 CEO 역할을 했던 '스티브 발머'가 물러나고,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가 3대 CEO가 됩니다.


사티아 나델라에게 주어진 임무는 당연해 보였습니다.  공룡기업 취급을 받는 MS를 다시 혁신의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10만 명이 넘는 직원이 있는 대기업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혁신 기업은 CEO가 그냥 말로만 떠들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티아 나델라가 CEO가 되고 첫 번째 한 일은, 사내 문화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혁신은 문화에서 나옵니다.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이 효과적으로 구현이 되어서, 제품으로 나와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는, 한두 명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 전체가 혁신을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MS는 물론 태생이 스타트업이었던 IT 회사라 어느 정도 혁신의 문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그 혁신을 가로막는 문화들도 생겨났습니다.  직원들 간의 지나친 경쟁, 팀 간의 견제, 중복된 개발, 남성 중심의 개발자 문화.   사티아 나델라는 이런 안 좋은 문화가 MS의 혁신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를 없애기 위해 2가지를 바꿉니다.


먼저 직원들의 평가 시스템을 바꿨습니다.


MS는 소위 스택랭킹(Stack Ranking)이라는 평가 시스템을 쓰고 있었는데, 이는 모든 직원을 상대평가로 5개의 등급으로 분류하고, 최하등급을 받은 직원은 알아서 회사를 나가야 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IT 회사들은 실력 없는 직원을 자르고 실력 있는 개발자들을 계속 영입하기 위해 이러한 평가 시스템을 쓰는 회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직원들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혼자만 열심히 하고 동료와의 협력에는 등한시했습니다.  상대평가이기에 동료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만큼 자신이 하위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사티아 나델라는 이러한 평가 시스템이, 협업을 방해하고 혁신을 막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가 시스템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고, 평가의 기준도 다른 동료나 팀을 많이 도와줄수록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혼자서 얼마만큼 했는가 보다,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는가에 더 큰 비중을 주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꾼 것은 다양성과 소속감을 최우선으로 세운 것입니다.


직원을 뽑을 때부터, 평가와 승진까지 회사 내 모든 문화에서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문화로 바꿨습니다.  여성, 소수인종, 성소수자 등 뛰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아왔던 직원들이 편견 없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직원교육을 시키고, 또 직원을 뽑을 때도 다양성을 중시해서 편견 없이 뽑도록 하고, 직원 평가를 할 때도 얼마나 다양성과 소속감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했는가가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사내 소수 민족들의 모임도 장려하고 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일도 적극 지원했습니다.


이렇듯 말로만 사내 문화를 바꾸자고 한 게 아니라, 회사 시스템 자체를 바꿔서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화를 이끌 수 있도록 바꾼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만 바뀐다고 그 기업이 당장 혁신적인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협력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해도, 시스템 때문에 협력이 힘들다면 실제로 협력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IT 회사에는 프로그래밍 소스를 저장하고 관리하고 테스트하는 엔지니어링 시스템(Engineering System)이 있습니다.  회사마다 각기 다른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쓰기에,  IT 회사에 처음 취업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회사의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배우는 일입니다.


 MS는 오랫동안 '소스디포(Source Depot)'라는 자체 시스템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단점은 다른 팀의 코드를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팀 간의 협력을 위해서는 다른 팀의 코드를 자유롭게 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그것이 힘들었습니다.


또한, MS 자체 시스템이다 보니, 다른 회사들이 쓰는 시스템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일반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시스템은 '깃(Git)'이라는 오픈소스 시스템이었지만, 오픈소스에 소극적인 MS는 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MS는 오랫동안 써왔던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과감히 통째로 바꿉니다.


기존의 모든 코드를 소스디포에서 깃으로 전환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존 시스템에 익숙했던 직원들의 반발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협력과 효율을 위한 부득이한 변화로 받아들이고 추진하여, 엔지니어링 시스템의 변화 이후 팀 간의 협력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MS의 더 큰 문제는 다른 IT 회사들과 달리 폐쇄적인 개발 환경을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윈도우즈 OS를 중심으로 돌아갔기에 윈도우즈가 없이는 개발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윈도우즈가 스마트폰에서 실패하고, 서버 시장에서도 리눅스가 더 많이 쓰였기에, 윈도우즈 OS의 종속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시대에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MS의 폐쇄성에 안티 성향을 가진 많은 회사들과 개발자 커뮤니티들은 모든 것을 공개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로 방향을 전환하고, 수많은 훌륭한 프로젝트들이 오픈소스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MS는 오랫동안 폐쇄적인 환경에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멀리하다 보니, 서서히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렸고, 이는 혁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MS는 다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수용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는 프로그램을 오픈소스로 풀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MS의 주력 개발언어인 닷넷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리눅스 버전으로도 내놓았습니다.   또,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라는 개발용 에디터를 만들어 무료로 풀고 윈도우즈가 아닌 컴퓨터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는 순식간에 개발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개발툴이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깃허브(Github)'를 거액을 들여 인수합니다.  MS는 단순히 오픈소스에 걸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오픈 소스를 주도하는 회사로 거듭납니다. 




'윈도우즈'는 오랫동안 MS의 캐시카우였습니다.  PC 시장이 줄고, 윈도우즈 사용자가 줄었다고는 해도,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MS가 윈도우즈로 벌어들이는 돈은 엄청납니다.   하지만, 2010년 전후에 MS가 스마트폰에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윈도우즈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윈도우즈 환경과 스마트폰 환경을 맞춰서, 윈도우즈 사용자를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얼핏 나빠 보이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PC는 PC이고, 스마트폰은 스마트폰대로 사용하기 편하면 그게 최고였습니다.  MS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윈도우즈 OS가 계속 성공하길 바랬으나, 스마트폰도 실패하고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즈마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MS는 당시에 다급하지 않았습니다.  윈도우즈는 여전히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다 주기에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윈도우즈는 MS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혁신의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불확실한 혁신을 위해 확실해 보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없애기는 아주 힘듭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룡기업들이 이러한 황금알을 낳은 거위를 죽이지 못해서, 결국엔 서서히 도태됩니다.


이때 MS는 과감히 윈도우즈를 버리기로 합니다.


버렸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 수 있지만, 윈도우즈의 업그레이드를 무료로 하고, 다른 MS 제품들이 윈도우즈에 종속되지 않도록 사업의 방향을 전환합니다.  2010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MS 내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MS는 수십 년간 윈도우즈를 제외한 OS 환경은 배타적으로 거부해 왔지만, 이제는 모든 OS 환경을 수용하는 정책으로 바꿉니다.


오피스 제품이 다른 OS로 나오게 하고, 닷넷은 리눅스에서도 돌아가게 합니다.  애저에서는 공식적으로 리눅스를 제공하고 윈도우즈 안에서도 리눅스가 실행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안드로이드 런쳐도 만들고, MS의 엣지 브라우저는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등에서 모두 설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윈도우즈는 MS의 주력 상품이 아닙니다.  윈도우즈 사업부에서 매출이 줄어도 MS는 그리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제는 클라우드의 매출이 윈도우즈의 매출을 능가했고, 오피스로 벌어들이는 돈이 윈도우즈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더 큽니다.  이로 인해, 윈도우즈 매출이 매년 감소함에도 MS의 전체 매출은 계속 늘어나게 되고, 주가도 이에 따라서 계속 올라갔습니다.




정리하자면,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하고 변화를 준 것은 회사의 시스템을 안팎으로 전부 바꾼 것입니다.  평가 시스템과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바꾸고, 오픈소스를 장려하고 윈도우즈의 종속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여기에 가장 큰 철학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마인드입니다.  MS의 모토는 'To empower every person and every organization on the planet to achieve more'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조직들이 더 크게 성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회사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MS는 2000년에 독점 판결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혼자만 독점으로 성공하려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MS의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습니다.  사내에서도 협력과 상생을 강조하고, 개발 환경도 오픈하고, 다른 회사들과도 협력을 우선으로 하는 회사로 환골탈태했습니다.


그 결과 MS는 시총이 3조 달러가 넘는 전 세계 최고 가치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10년 전보다 주가가 무려 13배가 넘게 올랐습니다.


MS가 윈도우즈에 연연하고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지금쯤엔 망해버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최고의 캐시카우를 버리면서까지 혁신을 위해 변화해 왔기에 지금의 MS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MS는 AI 시대를 리드하는 최고의 혁신적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혁신의 아이콘이었지만, 덩치가 커진 후 공룡이 된 회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때 공룡 기업으로 비난받았지만, 다시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변화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화를 주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회사에겐 2가지의 결말 밖에 없습니다.


서서히 망하거나,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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