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호 Feb 04. 2024

애플 비전 프로 (Apple Vision Pro) 리뷰

과연 500만 원의 가치가 있을까?

애플에서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라는 새로운 VR 기기가 나왔습니다.  가격은 3,500불(256GB 버전 - 512GB는 3700불, 1TB는 3900불)에 세금별도이니 한국돈으로 최소 515만 원 정도 됩니다.


VR/AR 기기는 역사가 꽤 깊은데, 1995년에 나온 닌텐도의 '버추얼 보이'부터 작년에 나온 메타의 '메타 퀘스트 3'까지 여태껏 꽤나 다양한 제품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끈 제품은 많았어도 정작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동안  VR 기기의 가장 큰 약점으로는, 하드웨어 기술력이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기에 많이 부족했다는 점이고, 또 착용감이 좋아서 오래 쓰고 있기가 힘들고 거추장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전 프로는 가장 최근에 나와 역대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고, 게다가 하드웨어의 명가인 애플에서 만들었으니, 상당히 기대도 높았습니다.  과연 애플의 비전 프로는 VR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깔끔한 애플 비전 프로 박스




VR기기는 양쪽 눈에 각각 따로 영상을 보여줘야 하기에, 실제 TV와 같은 화질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최소 2배가 넘는 해상도를 제공해야 합니다.  게다가 VR로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영화 화면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VR은 화면 밖까지, 즉 눈의 시야각 전체를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한쪽 눈에 4K 해상도를 제공한다고 해도, 실제 느낌은 그의 절반 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VR 기기는 일반 TV보다 최소 4배 높은 해상도를 제공해야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일반 사람들은 8K 정도의 해상도라야 진짜처럼 실감 나는 화면이라 느끼고, 그보다 낮은 해상도이면 실제가 아니라 디지털 화면이라고 느끼게 되기에, VR 화면으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하려면 16K 이상의 해상도를 제공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기술력의 한계로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해상도와 시야각이 불가능했다는 점이 여태껏 VR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애플 비전프로는 23메가 픽셀을 제공하는데 이는 산술적으로 한쪽 눈에 4K 이상의 그래픽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실제처럼 느껴지는 데는 아직도 좀 부족하지만, 기존의 VR 기기들에 비해서는 훨씬 선명하고, 또 VR을 처음 경험한다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비전 프로의 기본 세팅은 AR처럼 사용하게 되는데, 정면에 보이는 화면을 카메라가 패스스루로 VR화면에 뿌려주기에, 마치 실제 내가 있는 공간에 화면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2011년에 구글에서 나온 '구글 글라스'나 2015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홀로렌즈'와 비슷한 느낌인데, 당시보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에 훨씬 높은 해상도와 시야각을 보여줍니다.


제가 예전에 '홀로렌즈'를 테스트해 봤을 때는 시야각이 좁아서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비전프로의 저의 첫 느낌은 이 정도 해상도와 시야각이라면 충분히 쓸만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영화를 볼 때는 화면을 꽤나 크게 설정할 수 있어서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고, 게다가 3D 영화는 VR의 장점을 활용해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애플 비전 프로는 안경을 쓰고서는 쓸 수 없다.




그런데, 비전 프로는 단점은 처음에 착용할 때부터 발견되었습니다.


비전 프로는 안경을 쓰고서는 쓸 수 없습니다.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비전 프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라식 수술을 하거나, 콘택트렌즈를 끼거나, 아니

면 본인의 안경 처방전으로 자기 안경과 같은 도수의 특수 비전 프로 렌즈를 주문(가격은 150불, 난시 교정은 안 됨) 해야 합니다.  


쌍안경처럼 자체적으로 초점거리를 조절할 수 없고, 비전 프로의 센서가 눈동자를 트래킹해야 하기에,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는 아예 사용을 못하게 해 놨습니다. 눈동자 트래킹은 비전 프로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데, 따로 컨트롤러가 없이 손가락과 눈동자로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기에, 눈동자 트래킹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는 사용에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만듦새는 애플 제품답게 아주 고급스럽고 무게가 무겁다고는 해도 쿠션이 충분히 있어서 착용감이 꽤 좋습니다.  또 무거운 배터리는 따로 배터리 팩으로 만들어서, 비전 프로와 분리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비전 프로를 사용할 때, 배터리 팩은 호주머니에 넣고 비전 프로와는 유선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비전 프로의 무게를 상당히 줄일 수는 있었지만, 유선으로 배터리와 연결해야 한다는 점은 좀 거추장스럽습니다.


착용 스트랩은 머리 크기를 재서 대, 중, 소 중 하나로 주문해야 합니다.  가족 중에 머리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으면, 다른 크기의 스트랩은 추가로 주문해야 하는데, 역시 애플답게 스트랩 하나 추가하는데 100불입니다.  (뭐 5백만 원이 넘는 비전 프로를 사는 사람이라면 스트랩 하나에 100불이야 껌값이겠지만..)


비전 프로를 처음 쓰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화면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기본으로 있는 앱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비전 프로로 엄청난 경험을 바로 해보고 싶었지만, 딱히 대단한 앱이 없어서 실망했습니다.  3D로 공룡화면을 보여 주는 앱은 꽤나 실감이 났는데, 그게 다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넷플릭스나 유튜브 앱은 없고, 디즈니 플러스 앱만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는 아직까지 비전 프로용 앱을 만들지 않은 거 같습니다.  VR용 게임도 딱히 대단한 게임을 제공하지 않아서 실망이었습니다.


다른 사이즈의 스트랩을 추가로 사려면 100불이 더 든다.




그런데, 맥북이 있을 경우엔, 맥북과 연결해서 가상 모니터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을 수 있는 게, 비전 프로의 해상도가 가상모니터로 4K 비슷하게 제공을 하기에, 맥북의 화면 대신 눈앞에 아주 큰 4K 모니터를 연결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맥북의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사용해서 조작이 가능하기에, 웹서핑도 할 수 있고, 비전 프로 앱이 없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도 맥북을 통해 보면 됩니다.  (물론 맥북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또, 아이폰과 연결하면 페이스타임으로 전화를 할 수 있는데, 이게 좀 웃깁니다.  사실 VR로 페이스타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같은 공간에서 바로 내 앞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실감 나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VR을 낀 상태에서는 내 얼굴이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걸 극복하고자, 비전 프로에서는 '페르소나'라는 일종의 '아바타'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게 뭐냐면, 내 얼굴 대신에 나를 닮은 아바타가 상대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전 프로의 페르소나는 주커버그가 메타버스 발표할 때의 우스꽝스러운 만화 같은 아바타는 아니고, 내 얼굴을 스캔해서 컴퓨터로 만든 실제 사람과 매우 흡사한 얼굴인데..  그래도 여전히 CG라는 느낌은 강합니다.


또 좀 웃기는 점은 이 페르소나가 비전 프로의 고글처럼 생긴 바깥쪽 화면에도 보이게 됩니다.  즉 누가 공공장소에서 비전 프로를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이 얼핏 봤을 때, 그 사람이 비전프로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스키 고글을 쓴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느낌은, 이게 이상하고 웃기기만 하지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제가 기대했던 상대방과 같은 가상공간에 있는 듯한 생생한 대화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  차라리, 그냥 아이폰으로 페이스타임을 해서 상대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게 낫지, 굳이 비전 프로를 써서 상대의 진짜 모습이 아닌, CG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 같습니다.

이 고글 같은 부분은 그냥 덮개가 아니라 여기에 페르소나가 보인다.  고글 부분의 아래쪽엔 여러 개의 카메라가 있어서 패스스루를 제공한다.




제가 비전 프로를 써보고 느낀 장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점:

1. 현존하는 최고의 VR 기기.  높은 해상도와 넓은 시야각.  최고의 VR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2. 착용감이 생각보다 좋다.

3. 영화를 볼 때 4K의 대형 화면으로 보는 느낌이다.

4. 맥북의 가상 모니터로 쓸 수 있다.


단점:

1. 안경을 쓰고서는 착용할 수 없다.

2. 앞쪽이 무거워서 오래 쓰면 거북목이 될 거 같다.

3. 배터리 팩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4. 앱이 별로 없다.

5. 페르소나는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500만 원 주고 지금 이걸 사기엔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를 발표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왠지 이걸로 새로운 세상이 올 거 같지만, 값은 비싸고 사용하기엔 거추장스러운.. 딱 그런 느낌입니다.


홀로렌즈도 처음에는 엄청난 관심을 끌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해서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쳐둔 상태입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팀에서 애플 비전 프로 팀으로 옮긴 분들이 많습니다.)


제 느낌은, 가격이 지금의 10분의 1 정도가 되고, 해상도가 2배 더 높아지고, 절반으로 가벼워지고, 안경을 쓰고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상업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아마 10년쯤 지나면 이렇게 나올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도 VR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왼쪽이 비전 프로의 배터리 팩.  아이폰과 비슷한 크기에 더 두껍고 무겁다.


작가의 이전글 공룡기업이 혁신기업이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