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

by 글쓰는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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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따뜻한 위로



김훈미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가 한 번씩은 찾아온다. 삶의 거친 파도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럴 때 누군가의 관심과 배려는 큰 위로가 된다. 위로란, 상대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휘청거리던 삶을 위로받은 적이 있다. 상대의 진심어린 관심과 응원은 큰 힘이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 준다.


평온했던 일상에 시련이 닥쳐왔다. 아침까지 멀쩡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심장 발작을 일으켰고, 응급실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심정지가 왔다. 가까스로 목숨은 다시 살려냈지만 심장 기능을 잃어 에크모를 달고 우리들 앞에 애처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에크모는 심정지가 와서 인공호흡기로도 살리기 힘들 때 환자들이 기계에 의존해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다. 나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엄마, 집에 가자”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하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온몸이 하얗게 질린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백혈구여과제거 성분채집혈소판을 구해 오세요! 혈액 안에서 혈소판농축액만 선택적으로 뽑아낸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일반 수혈과는 다르게 채집하는데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환자분한테 매일 혈소판을 넣어주어야 하는데, 혈액은행에도 A형 혈소판이 모자라고 저희 병원에도 부족해요. 앞으로는 환자 가족 분께서 직접 구해 오셔야 수혈을 원활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간호사가 백혈구여과제거 성분채집혈소판을 구해 오라고 한 건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누워 있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에크모의 기계적 특성상 혈소판이 환자에게 투과되지 못해 환자는 주기적으로 새 혈소판을 수혈받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혈소판과 적혈구를 따로 수혈받아야 할 정도로 그 수치가 매우 낮았던 상태였다.


“혈소판이 급하니까 꼭 지정 헌혈로 하세요. 다만 자식분들을 포함해서 4촌 이내까지는 헌혈하시면 안 됩니다. 혈족 간에 혈소판을 수혈받으면 혈관에 병이 생길 수 있거든요.”


수혈을 받지 못하면 엄마의 생명이 위급할 수도 있다는 말에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가장 흔한 혈액형이라고 생각했던 A형은 생각보다 적었고, 그마저도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헌혈할 조건이 안 되거나 근무시간 때문에 보건소 문 닫는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일반 헌혈을 해준다는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엄마에게 필요한 혈소판의 양을 맞추기는 어려웠다. 나와 형제들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자식들이 엄마 한 명을 못 살리는구나’하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던 차에 동생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카페가 있는데 혹시 거기에 한 번 올려볼까? 누군가를 위해서 뭐든 나누자는 취지의 카페거든.”


“카페? 에이, 주변에서도 해줄 사람이 없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1시간 30분씩 투자해서 혈액 속의 혈소판을 채취해내는 헌혈을 해줄까? 아무리 나누는 카페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 위해서 헌혈할 리가 없잖아.”

동생은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카페에 엄마의 사연과 혈소판 헌혈을 해줄 분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시선은 자동으로 동생에게로 향했다.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실낱같은 희망이 문자로 타고 날아들었다.


서울에 사는 분이라며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물었다. 처음엔 장난인가 싶었다. 문자로 전해지는 말투는 진지했지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내고 피를 뽑아준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내가 동생을 대신해서 전화를 걸었다.


“저, 혹시 1시간 30분 정도 바늘을 꽂고 계셔야 한다는 내용은 카페에서 보셨나요? 잠깐 피 뽑는 게 아니라서 몸이 힘드실 수도 있는 건데 그래도 하실 수 있겠어요?”


“할 수 있으니까 문자를 한 거죠. 이런 일로 장난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나저나 어머니는 상태가 좀 어떠신가요? 혈소판 수혈하면 나으실 수 있는 거죠?”


혈소판 헌혈 후 몸이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은 아예 관심 밖이라는 듯 오히려 엄마의 상태를 걱정해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감사함에 대한 눈물이었다. 잠시지만 만약 돈을 요구하면 얼마를 드려야 하나 고민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진심으로 나눔을 실천하려는 분에게 나는 불신과 의심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나눔 천사에게 “엄마가 일반실로 옮기신 후 꼭 인사드리러 가겠다”라는 말과 함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형제들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 시간, 또 다른 문자가 날아들었다.


“혈소판 헌혈, 오늘 저녁에 할 수 있어요. 어머니 계신 병원이랑 성함 말씀해 주세요.”


전화를 거니 수원에 사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고 했다. 혈소판 헌혈에 관해 설명하려는 나에게 “설명 안 하셔도 잘 안다.”라며 “3주 전에도 혈소판 헌혈을 했다”고 말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성인이 된 후로 두 어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잊지 않고 헌혈을 하는 것 같았다. 작은 도움이지만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어머니가 빨리 회복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며 위로를 전했다. 동생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인데, 마음 씀씀이가 정말 어른스러웠다.


그날 밤, 이미 지칠 때로 지쳤는데도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평온했다. 한 명 한 명 ‘나눔 천사’들의 따뜻한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했다. 보호자실에서 나온 우리는 엄마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유리 벽에 대고 말을 했다. 의식은 없지만, 엄마가 분명히 듣고 있을 거라 믿었다.


“엄마, 천사 같은 분들이 너무 많아. 다 엄마를 위해 조건 없이 혈소판을 헌혈해 주신대. 고마운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꼭 일어나야 해, 엄마.”


나눔과 베풂이라는 건 가진 것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거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나 역시 나중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 봉사활동도 다니고 나누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곤 했다. 빨리 꿈을 이루고 싶어 달음박질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나눔은 나중으로 미뤄지곤 했다. 하지만 엄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무엇을 가졌든, 얼마를 가졌든 상관없이 나누려는 진심 어린 마음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해가며 살아왔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각박한 내 마음이 스스로 세상살이를 더욱 버겁고 힘들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이란 자신의 것을 타인과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깨닫게 됐다. 누군가의 나눔이 어디에선가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힘내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 가족에게 나눔의 희망을 몸소 보여주었던 나눔 천사를 떠올리며, 나도 평생에 걸쳐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그분들은 내 인생에 방향 등이 되어준,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 후 엄마는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갔지만,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나눔 천사들은 엄마를 살린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나눔은 우리에게 세상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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