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by 글쓰는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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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임종진



1년전 오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왔다.


생각하려니 지금 너무 어머니가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그립다. 나는 내가 태어난 한국땅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년전 오늘.


나는 38년 동안 살아왔던 한국 땅의 모든 것에서 떠나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와야 했던 이 마음을 누가 알수 있으리요...

어떤 이들은 왜 가야만하냐고 물었고 가야만하는 이유를 들은 이들은 꼭 그 나라에 가야만 하냐고 물었다. 그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그 땅을 향한 사랑이 있다.

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오늘 나는 인도 땅에서 살아간다.


무작정 떠나야만 했던 것은 아니였다. 38년 동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떠나고 때론 떠나보내는 훈련이 계속 되었다. 그 훈련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나의 선택과 함께 경험되어졌다. 고향을 떠나 대학진학을 위해 떠나왔고, 군대를 가기위해 다니던 대학을 떠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천국으로 떠나보내야만했을때 분명 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내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다.

아버지의 떠남은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떠남이였다. 나의 인생이 단 한번뿐임을 깨닫게 되었고 얼마남지 않았음을 아버지의 69년의 마지막 생을 통해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떠남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찾아가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평생 함께 할 수 없지만 나의 단 한번뿐인 인생의 단 한순간이라도 사랑이 필요한 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장애인의 날에 지체 장애인분들과 함께 청와대를 다녀오며 버스에서 한분 한분 직접 안아서 휠체어에 앉혀 드렸던 날과 어느날 소록도 병원으로 자원봉사하고 싶어서 혼자 떠나게 된 날. 만남을 통해 사랑이 전해졌다. 그 곳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분은 한센병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마음에는 세상을 보고 계셨다. 사랑을 전하기 위해 떠남은 오히려 사랑으로 채워졌다.


지금은 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분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 아버지의 사랑처럼...

나는 세상에서 알수도 줄수도 없는 사랑을 거저 받았다. 그래서 그 사랑을 거저 주고 싶은 것 뿐이다. 그 사랑을 전할수록 그 사랑이 더해진다.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전할수 있을까? 정말 나의 인생을 통해 받은 사랑을 전하고 싶어졌다. 사랑이 가장 필요한 곳에 나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너무 생생하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인도에서 울게 만들었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의 갓난아기가...

어떤 곳인지 사랑이 필요한 그 곳에 나의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그 발걸음이 바로 인도였다.


2019년 6월.

난생처음 경험하지 못한 47도의 뜨거운 날씨. 마치 뜨거운 드라이기 열기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매일 현지인들과 살아가며 이들의 대화속에서 마치 무인도의 바보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들어도 들리지 않는 언어의 답답함과 한계를 오늘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가 위가 아파고 갑작스러운 고열로 인해 병원에 가야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괴롭고 속상하고 힘들어야 하는데... 눈물속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지만 분명 사랑이라는 믿음하나로 떠나왔던 나의 삶은 반드시 사랑의 열매로 맺혀질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길...

매일 살아가는 은혜 속에서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사랑이라는 믿음 하나이오니

오직 믿음으로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수 있고

이 순간이

내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살아있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음에

참,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열정이 아닌

당신의 인도하심 따라

이루려는 마음보다는

순종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당신의 손에 맡기오니

사랑으로 감싸 주시옵소서.

끝까지 사랑하는

믿음하나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도 땅에서 보고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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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가까운 슬럼(slum) 지역은 온갖 쓰레기더미와 소와 개의 오물 위에 썩은 악취가 나는 허름한 판자집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놀기도 하고 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안타깝고 긍휼한 마음이 밀려왔다. 날마다 그들의 삶의 모습과 환경을 보며 나의 마음 속에 인도를 향한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을 전하는 일은 미소짓는 인사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들을 보며 환하게 인사하면 그들도 환하게 인사를 해준다. 가장 낮은 곳에서 거저 받은 사랑을 거저 나누며 살아가겠노라 다짐해 본다.


신의 나라를 경험하다. (소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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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길을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멈추게 되었다. 한 마리의 소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소의 곁에서 밤새 모닥불을 피워놓고 소에게 천을 덮어주고 물과 로띠를 먹여주며 죽어가는 소에게 다리까지 주물르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소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였을까?

소가 신(神)인 인도에서 진정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진정한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에 누릴수 있음을 다시 한번 믿음으로 고백해 본다.



잠깐 멈추어 인도를 바라보다


인도의 봉쇄령은 세계 최대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 봉쇄령이다. 13억 8천 명을 집에 묶어두는 세계 최대의 전국 봉쇄(Lock down)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모든 교육기간, 상점, 회사, 교통수단 등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인도에 와서 인도 땅을 밟지 못한다는 상상을 해 본적은 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멈추고 인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도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이들 대부분은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인도의 봉쇄령은 빈곤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의료시스템이 열악하여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상황과 당장 먹을 게 없는 극빈층에게 대책 없는 봉쇄령은 고문과 같다. 모든 일자리는 사라졌고 교통수단이 폐쇄되자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봉쇄된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걸어서 이동하였고, 중부 인도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으며, 강력한 봉쇄에 굶고 버티던 수 만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거리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찰들과 충돌하여 시위를 벌이며 인명피해 또한 있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은 전해지고 있고 전해져야만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울고 함께 웃게 될 그 날을 기대해본다.


2011년

인도 땅을 처음 밟았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는

갓난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미안한게 없는데 미안했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제게 돈을 원했지만

분명 사랑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한 영혼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눈물과 함께 부어주셨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울었던 숱한 날들로 인해

이제는 이렇게 인도땅에서

이들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갑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내 삶 속에 담겨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사랑으로 전하게 되는 그날을

생생하게 그려봅니다.

한 영혼을 향한 당신의 마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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