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극복기

by 글쓰는 세무사


층간소음극복기


김회선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결벽증 환자이다. 때문에 일상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깨끗한 바닥에 먼지라도 떨어질까, 긴장하는 것이 바로 나였다. 결벽증 때문에 번번한 직장에 다니지 못하고 그나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 11시에 퇴근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모두가 잠든 시각. 빗자루로 더는 먼지가 나오지 않는 거실 바닥을 쓸고 청소기를 돌리고 젖은 걸레로 바닥이 젖어갈 때쯤에야 만족한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걸레로 모서리를 쳐대는 소리, 발소리 등 소음이 울린다. 알고 있다. 이러한 나의 행동이 아래층 사람들에게만 얼마나 민폐를 끼친다는 것을.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기계처럼 청소를 시작한다. 피곤한 몸뚱이는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날도 어김없이 청소를 하던 날이었다. 그런데 새벽 1시경.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똑똑-.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현관문을 노려봤다. 이윽고 다시 들려오는 똑똑똑-. 좀 전보단 좀 더 급하게 울리는 소리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한참 두들기던 소리가 멎고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나서야 하는 긴장이 풀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래층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 앞에는 A4용지가 붙어있었다.

'위층 이웃분에게. 안녕하세요. 요즘 날이 많이 덥죠? 다름이 아니라 새벽에 잠을 자야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요. 얼굴 좀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연락처를 남깁니다. 그럼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나는 가볍게 A4용지를 구겼다. 무시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끄러워 봤자 얼마나 시끄럽겠냐고. 그런데 나의 그 안일함이 결국 화마처럼 터져버렸다.


빗자루로 열심히 먼지를 쓸어내고 청소기를 돌리려던 어느 야심한 새벽 1시. 누군가의 고함이 울렸고, 현관문이 흔들렸다.


“나와! 나오라고!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누가 발로 현관문을 차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나 했더니, 아래층 사람이었다.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남편을 말리는듯했지만, 말소리에 의하면 술을 건하게 마신 터라 그동안의 화를 감출 수 없는지 남자는 언성을 더 높이며 현관문을 발로 찼다. 나는 순간의 두려움에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집에 없었고 방에서 게임을 하는 여동생과 나뿐이었다.

결국, 경찰을 불렀다.


잠시 후 온 경찰이 화가 많이 나 있는 남자와 밖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곧 경찰이 올라왔다. 잠시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갔다.

얼굴에 붉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화가 나 있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진정시키고 있는 여자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남자가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새벽에 그렇게 시끄러운 거예요? 잠을 못 자겠어요.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 이사 와서 편하게 잔 적이 없어.“


나는 내가 정신이 아파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청소를 하느라 층간 소음을 만들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재촉이라도 하는 듯 남자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급한 숨을 몰아 내쉬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춧가루라도 퍼 넣은 것처럼 눈가가 맵더니 결국 눈물이 났다. 갑자기 우는 나 때문에 당황한 경찰은 남자에게 일단 진정하라며 나를 막아섰다. 분명 내가 잘못한 건데, 오히려 피해자 마냥 우는 내가 한심했다. 소심하고 결벽증이 있는 내가 보잘것없이 창피했고 그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괜찮으냐며 눈물을 닦아줬다. 속상하게 왜 우냐면서 남은 한 손은 내 손을 주물렀다. 피가 통하지 않던 손에 소름이 끼쳤다.


"나도 아가씨만 한 딸이 있어서 그래. 속상하게 울지 말고 말해봐. 지금 아가씨를 혼내려고 온 게 아니야. 상황을 듣고 싶어서 그래. 무서워할 필요 하나 없어. 그냥 이 양반이 술을 먹고 잠시 흥분해서 그래. 그렇죠, 여보?“


되묻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자의 선한 말투에 긴장을 풀고 조금씩 입을 뗐다.


"사실... 제가 결벽증을 앓고 있어요. 그래서 퇴근하고 나면 저도 모르게 시끄럽게 청소를 하게 돼요. 정말 죄송합니다.“


"진작 이렇게 얼굴을 보고 이야기했으면 좋았잖아요. 나는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시끄럽게 구는 줄 알고. 알고 보니 아가씨도 많이 힘들었겠어요.“


오히려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여자는 말했다. 분명히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겁이 난 것이었는데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달랬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대화는 경찰을 두고 이어져갔다. 알고 보니 남자는 새벽 6시에 일을 나가서 밤 9시인 이른 저녁에 잠에 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늦게 퇴근한 내가 청소를 하는 바람에 매번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출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함에 한참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나를 마냥 꾸짖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자고 했다. 남자가 자는 시간은 피해서 청소를 하는 쪽으로 말이다. 나는 내 결벽증이 마냥 부끄럽고 치부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부가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 남자분이 주무시는 시간에는 청소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아래층 사람들이 돌아갔다.


내 아픔을 비난하지 않았다. 나는 그거 하나만으로 정말 감사했다.


그 이후로 나는 늦은 시간에는 청소하고 싶어도 꾹 참고 남자가 출근하면 그제야 청소를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시간에 맞추다 보니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여자의 손에는 시루떡이 담긴 접시가 있었다.


"이사 오고 떡도 안 돌린 것 같아서. 우리 한번 잘 지내봐요.“


여자가 건넨 손이 따뜻했다. 나는 사실 그동안 결벽증 때문에 누군가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웃과의 대화라니.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기 때문에 감히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웃이 생기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결백 증도 전보다는 심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맞벌이 노년 부부는 자식들을 다 분가시키고 그 외로움에 개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밥을 챙겨줄 여유가 없다 보니 매번 개를 굶기는 것이 신경 쓰여 조금씩 나에게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가끔씩 개의 끼니를 챙겨주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부부가 바쁜 일이 있거나 하면 내려와 내가 개를 돌봐주고는 한다.


악연이라고 생각했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그 관계는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 간의 대화와 이해라는 것을 말이다.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니, 관계는 금방 회복됐다. 이제는 저녁도 가끔 부부와 먹고 가고는 한다.


분명 무서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생각보다 말 많고 정 많은 아저씨였다. 그때는 자신도 흥분해서 언성을 높였다고 오히려 사과했다. 이제는 딸처럼 잘 챙겨주고 내 병을 걱정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요즘은 더러워졌던 마음들을 치우는 기분이다.


똑똑-. 오늘도 어김없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알고 있다. 저 문을 열면 환하게 맞이해 줄 소중한 이웃이 있다는 것을...



도서출판 선한이웃의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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