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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Jan 26. 2023

점점 사라지고 있는 편의

당연한 줄 알았던 편안함

회사에 청소하시는 여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정년이 다가와 곧 퇴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사님께서는 조금 더 일하고 싶으신 눈치인데, 나이 때문에 그만두셔야 하는 모양이다. 청소용역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극강의 추위와 더위를 이기고, 남들이 치우기 싫어하는 더러운 것을 다 만져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보통 이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고령의 여사님들이 많으시다.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이 돈도 얼마 안 주는데, 일이 고되어서 오래 하기 힘들다고 한다. 괜한 오지랖 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대의 여사님들이 은퇴를 하고 난 다음에는 누가 이 일을 해주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I 로봇? 정형화되지 않는 일은 인간이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


3D라고 불리는 업종들은 모두 힘들고, 더럽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 일은 반드시 누군가 해주어야 사회가 작동할 수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참한 백반집이 많았다. 몇천 원 안주고도 시래깃국에 생선구이와 갖가지 반찬들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던 호사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백반집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왜일까? 식자재 물가상승, 그것도 맞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반집은 노동집약적인 구조이다. 내가 그렇게 호사스럽게 비교적 저렴하게 그 맛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우리 할머니들과 이모님들의 엄청난 노동력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 그 할머니와 이모님들은 그 일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들을 이어서 그 일을 해줄 젊은이들이 없다. 비단 백반집뿐일까? 최근 울산의 대표적인 대기업 현대중공업은 인력난으로 생산공정에 차질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피력했다. 그래서 정부의 도움으로 몇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채용해 인력난을 해소하려고 한단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이란다. 이러면 어른들께서는 혀를 끌끌 차신다. 배가 불러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그 돈 받고(최저시급) 그렇게 고된 일(조선은 정말 극강의 노동이다!!!)은 안 하련다 하고 말이다. 그렇게 뼈가 빠지게 일해봤자, 불황이 오면 그들은 소사장제라는 선진화된 경영시스템 아래 수많은 직원들을 외주용역으로 돌리고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래서 울산의 많은 젊은 사람들은 AI 처럼 학습화된 것인지 지네들 힘들 때만 헐값에 이용해 먹는 그 구조에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조선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어차피 대다수가 소사장제다. 회사는 리스크 제로, 노동자였던 나는 억지로 사장이 되어 리스크 120% 지는 정글 같은 선진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만 봐도, 항상 밑에만 피가 터지고 치열하다. 최상위 누군가는 우아하게 경영의 효율화를 외치며 고급지게 스테이크 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연진이네 예솔이처럼 아기 때부터 구찌배넷저고리 입는 그들과 출발선이 달라서 그런가... 피 터지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우리다. 


청소 여사님 이야기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무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편의들이 점점 더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뭐, 중국에서도 그 돈 받고는 일 못하겠다고 파업하는 거 봐서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잠시 반짝하고 가버릴 현상이 아닌 거 같다. 아마도, 앞으로는 내가 사는 물건과 받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금 '세상 만물은 소중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내가 함부로 혹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가슴속에 되새김해 본다. 나는 이 오래된 지구별에 정말 잠시 살다가 먼지처럼 사라질 존재이기에, 그 유한함을 인식하고 내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편의에 대해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나와 같이  피 터지는 아랫동네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좀 더 따뜻한 친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모두가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비록 타인에게서 지옥을 마주할지라도 그에게 친절을 베풀라.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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