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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May 26. 2023

쫄지마 바보야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직장상사의 눈 밖에 나면 회사생활이 고달프다.

1.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2. 회의에서 항상 공격당한다.

3. 설마 이런 거까지 입댈까 하는데, 입댄다.

4. 주위의 동료들이 슬슬 나를 피한다. 중요한 회의와 이메일에서 서서히 배제되기 시작한다.


이게 내가 현재 직장에서 느끼는 현상들이다. 본투비 개인주의자이기에 무리에 끼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은 없지만, 연일 계속된 공격이 심신을 피곤하게 하긴 한다. 다행히 본사 HR 감사가 나왔기에, 나의 이런 고충을 전달할 루트가 존재한다는 위안은 있지만, 정작 회사 내에서는 거의 고립무원이다. 일단 칼은 던져졌고 나는 적으로 간주되었기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 회색분자로 남기로 한 내 선택에 대한 결과이다. (Every action has consequences)


이전에 파콰드 영주와 싸웠던 외로운 전사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머리 좋은 사람은 3일 만에 그만두었고, 우둔했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이들은 조금씩 반항하다가 집단 따돌림으로 정신과 약을 먹고 퇴사했다. 많은 전사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회사에 꼿꼿이 마이웨이를 가고 있는 한명의 다른 부장님도 계시긴 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자세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퇴사를 생각했어야 할 거 같긴 하다.


내가 맨 처음 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 이런 미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들과 한 명의 섬, 마이웨이를 가고 있는 그 부장님에게는 무엇인가 모르게 하얀 막이 쳐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가까이 가면 다칠 거 같은... 물론 내가 굳이 그 부장님과 친해질 필요도 없었기에 나 또한 사내정치보다는 내 일을 묵묵히 해 나갔다. 하지만, 나의 파콰드영주는 자존감이 낮고 흑백의 세상에 살고 있기에, 회색분자들을 싫어했고 회색분자가 주는 가변성을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래서 때때로 그 회색분자들에 대한 테스팅과 공격을 감행했다. 약한 회색분자들은 그의 생각대로 자기편으로 합류하든지 다 퇴사해 버렸다.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나는 점점 이런 흑백 세상이 싫었고, 본사에서 How are you?라고 물어볼 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했다가 이제는 고충을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파콰드 영주는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했고, 그의 nitpicking 사소한 일로 트집 잡는 행위는 결국 그룹의 관심을 끌었고 그가 얼마나 하찮은 주제로 이슈몰이를 하는지를 스스로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파콰드 영주의 성을 함락시키기 시작한 것은 결국엔 본인 스스로의 아집과 흑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 때문이었지만, 본인은 정작 이 모든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밀그램의 실험'이라는 용어를 심리학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은 권위가 있어 보이는 존재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며 그 권위에 눌려 어떤 자기 판단을 하지 못하며 굉장히 잔인할 정도로 비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다. 밀그램의 실험 전에는 독일의 전범 군인들과 인터뷰하며 한나 아렌트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예루살램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ies of evil)으로 그 나치 전범 군인들의 행동을 설명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였지만, 그 전범 군인들은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결론은 우리 인간은 참으로 권위에 취약하다.  


굉장히 남같이 들렸던 밀그램의 실험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날마다 몸소 경험하다 보니, 인간이 타인에게 지옥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일 깨닫는다. 나는 다행히 파콰드 영주에게 완전히 굴복당하지 않았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오기로 버티고 있긴 하다. 하지만, 계속된 그의 치졸한 공격이 이어진다면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한가지 희망은 밀그램의 실험에서 모든 실험자가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면 다른 실험자들도 점점 그들이 받는 명령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들이 고통을 주고 있는 타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 한명이라도 그 권위가 만든 가스라이팅 상태를 깨고 나오기만 하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조직에서 그런 이성적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버티기로 했다.


얼마 전에도 왕따문제로 자살한 고등학생의 기사를 읽었다. 학교폭력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모든 세대를 아울려 펼쳐지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다. 그것이 학교가 되었건, 직장이 되었건 인간은 권위에 복종하고 그 권위를 가진 자가 타락해 주동하여 다른 한 개인을 괴롭힌다면 이런 문제는 항상 어느 조직, 공간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그냥 인간의 나쁜 본성인 거다. 하지만 존버해야 한다. 무리에서 소외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 시기는 무조건 지나가고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증언하고 그들이 잘 나가려고 할 때 그 앞길을 반드시 막아설 그 한 번의 기회는 반드시 오니, 부디 그 때를 생각하며 다들 존버하라. 쫄지마~!!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정직하고, 품위있고, 충실하며, 동지애를 가져야 합니다." by 악셀 하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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