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확실하고 실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과 불안은 나를 지금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지난 주말 3권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한 권은 이미 읽고 있었던 신경 끄기의 기술, 다른 한 권은 무례한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법, 마지막은 아비투스. 다 다른 책이었지만, 나는 책들을 읽으며 예혜약동섭천 -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덜 확신하며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 삶은 불확실성 자체이다. 삶에 대한 확신을 줄일수록, 내가 나를 그리고 타인을 좀 더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는 가치관이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이 '나 자신의 실패'를 그리고 타인의 실패에 대해 좀 더 관용적으로 대할 수 있다.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나왔듯이 우린 틀린 것에서 덜 틀린 선택을 하며 살아갈 따름이다. *인용: 신경 끄기의 기술
2. 계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느긋하며 여유가 있다. 왜일까? 그들은 남들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고 한다. 단순히 돈과 지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자본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타인을 조심스럽게 여유 있게 대한다고 한다. *인용: 아비투스
3. 품위란 우리 모두가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음을 지각하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인정과 배려,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인용: 무례한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법
불확실성이 강해질 때 인간은 불안해지고, 그 불안함이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표출하게 된다고 한다. 내 상황을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인 거 같다. 내 인생의 불확실성이 강해질수록 나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성급히 그들을 판단했고, 상대와 세상에 대한 더 큰 오해와 미움, 분노의 감정을 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자꾸만 남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태도를 보였던 거 같다. 그래서 더 공격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성급한 반응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나를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나라는 후회가 들었다.
삶은 불안하며 불확실하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구별할 수 있는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일상무상분 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나뉜 것이 없다. 깨침과 덜 깨침, 나와 타인, 잘남과 못남 등등 그 어떤 것도 둘로 나뉜 것이 아니라 본디 하나이며 구별이 없음을 뜻한다. 내가 타인과 나누어 생각할수록 나는 옳고 남은 그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잘 낫다는 것을 알리려고 할수록 나는 계속 증명해야 하며 남을 깎아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몸통에서 나왔으며 구별 없음을 이해한다면 내가 타인에 대해 좀 더 많은 공감과 연민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나는 생활인이며, Giver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하기에 때론 공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내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 대한 불완전성을 이해한다면 아마도 나는 나에 대해 그리고 남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성은 한다.
그래서 더더욱 내 확신을 줄이고, 겨울에 살얼음 위를 건너듯 조심하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적어도 이메일을 보내기전에는 내 어투가 공격적이지 않은지 너무 단정적이지 않은지 점검해 보자. 두번째, 상대가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인생은 원래 고통과 똥폭풍이 몰아친다. 그걸 피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