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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Jun 01. 2023

실체가 있는 삶

노가다는 절대 헛되지 않다.

직장생활이 길어지고, 이직을 하다 보면 별별 사내정치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전 회사에서 소처럼 일하시던 팀장님이 계셨다. 그는 별다른 자격증이나 화려한 경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처럼 일을 한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게 참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그는 항상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만 하시던 분이었다. 그 위로 수많은 상사가 거쳐갔지만 그는 여고괴담의 그녀처럼 그 자리 그대로 계셨던 분이다. 그 수많은 잘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CPA 자격증이 있었고, 영어를 어느 정도 했고 경력도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회사를 몰랐다. 무튼 나는 그 회사를 떠났고, 소처럼 일하시던 팀장님을 안타까워했던 거 같다.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에 따르면 소처럼 일하시던 부장님도 떠났고 화려한 경력의 그의 상사도 일을 잘 몰라서, 권고사직을 받았지만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현실로 와서, 회사의 어떤 영주에 관한 전설을 들어보면, 그의 밑에 들어온 어떤 야심 찬 직원은 몇 달 되지 않아 나갔다고 한다. 이유는 그 야심 찬 직원이 조사하고 알아낸 내용을 보고 받고 파콰드가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해서 그룹에 보고한 일을 알게 되고 바로 나갔다고 한다. 파콰드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해왔다고 한다. 어쩌면 국내회사에서는 그게 가능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일수록 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도장만 찍고 보고만 받는 사람이 아니다. A부터 Z까지 다 알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게 외국계 임원이다. 무엇이 되었건, 파콰드 영주의 똥줄 타고 실체 없이 헛소리만 해대는 작금의 모습을 보면 실체를 가지고 성장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좋으면 적당한 학벌과 자격증 그리고 외국어 실력으로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며 밑에 직원들 노력을 가로채면서 적당히 돈 많이 받고 사내정치 하면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외국어도 다들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거의 다 대졸이고, 차별화가 없다. 거기다 요새 젊은것들은 '공정'을 외치고 있기에 옛날처럼 쉽게 성과 가로치기가 안된다. 


직장생활을 길게 하다 보면 보인다. 지금의 노가다가 헛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막일은 내 업무의 실체를 파악하고 알맹이를 만든다. 더 열심히 파 들어간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할 말이 생기고 수박 겉핥기식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고, 뭐가 중요한지 알기에 사소한 것은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그가 뱉어낸 적은 말속에는 무게가 있다.


그렇다고 일만 하면 안 되는 것도 맞다. 세월을 잘 타야 하고 적당히 치고 빠지며 머리도 써야 한다. 하지만 당장 눈에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게, 반드시 나중에도 좋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을 길게 해서 보면 보인다. 존재란 반드시 시간이 쌓여서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기에, 짜깁기로 이어온 요행은 몇 번의 행운에서 끝나길 마련이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이제는 이해한다.


존재란 시간이 쌓여 형성되는 거야. 종적 개념이지. 여기저기 횡적으로 좋은 것만 짜깁기해서는 정체성이 없어. 스스로 깊숙이 돌아보면 반드시 역사를 마주치게 돼.
김진명 풍수전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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