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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Jun 12. 2023

사색을 하고 싶은 6월

퇴사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마감이 끝나간다. 회사 집 회사 집, 시골에서의 삶은 단조롭지만 생계를 같이하는 나로서는 일상이 단조롭지는 않다. 체력이 부족한 남편을 대신해 가사도 해야 하고 회사 업무도 해야 하고, 미친 파콰드 영주도 상대해야 하고, 칭얼대는 아이에게도 적당한 관심을 쏟아주어야 한다. 문득 내 삶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6월로 가고 있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지 않고 아침, 저녁은 서늘하지만 낮에는 더운 그런 계절. 나는 6월을 정말 너무 사랑한다. 이런 무더운 날에는 계곡이 있는 숲에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소리, 새소리를 듣고 소나무 냄새 맡으며 내 복잡한 머릿속을 정화시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이 며칠째 코피를 흘리고 있고 저녁이면 체력이 방전되어 있다. 그리고 새벽엔 통증으로 끙끙 앓으면서 소리를 지른다. 거기에 내 체력 역시 바닥을 치고 있고, 아이의 학교에서는 전화가 온다. 뭐가 되었건 쉬운 것이 없는 요즘이다. 남편에게 무엇인가 해주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좀 더 다정한 엄마노릇을 해야 하는데, 내 체력이 받쳐주지 못한다. 가사와 회사일 그리고 육아...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비를 견뎌야 한다고 하는데, 이 놈의 비는 도대체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 명리학적으로 볼 때 계묘년이라 더 힘든 것일까? 


요즘엔 참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해결에 방점을 두고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라고 하지만, 때론 그런 자세 혹은 자기 암시마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릿속으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와 주지 않는 그런 상황이다.   


넷플렉스에서 흙에 관한 다큐멘터리(Kiss the ground)를 본 적이 있다. 내용은 흙을 정화시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그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농부의 모습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농부는 가뭄과 우박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연이어 작황이 부진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은행에서는 대출을 조이고 있었고 농사가 망해서 가진 돈도 없고, 주위 농부들은 호심탐탐 자기 땅을 노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그 농부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던 그 시기를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때부터 땅에 대해 공부를 하고, 기존의 기업형 경작에서 다품종 자연농법을 기반으로 한 목축업 (rancher)로 전향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핵심 메시지도 좋았지만, 나는 그 농부의 마인드 셋에 감탄을 했다.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현재 내 상황 역시 고립무원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의 파콰드 영주는 이제는 내가 사회성이 정말 떨어지는 outsider인 거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남편의 병세는 아직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아이의 학교에서는 계속 전화가 온다. 순간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농부와 같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을 최고의 기회라고 여기며 다시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까 말이다.


보름째 잠을 설쳤다. 하지만, 산으로 명상산책을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끝내 생각해 낸 결론은 그래 지금의 시간을 기회로 삼자. 죽는 것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찌 되었건 나에겐 딸린 자식이 있고 나는 분명 이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퇴사하자. 

회사의 파콰드 영주 - 만약 본사에서 적절한 인사조치를 내리지 않는다면 파콰드 영주의 미친 기행은 계속될 것이기에 나는 회사를 그만둘 작정이다. 나는 2년이라는 기간을 채우고, 퇴직금을 받고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 한정된 정신적, 신체적 자원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아이의 양육) 해야 한다. 회사에서 계속된 미친 파콰드 영주의 기행을 감당하기에는 내 정신적, 신체적 자본이 넉넉하지 않다. 만약에 남편이 건강했다면 나는 아마도 끝까지 그 미친 파콰드 영주를 조져 놨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파이팅 할 힘이 없다. 이토록 죽을 듯이 다니기 싫은 이 미친 회사에 대해서는 나는 과감히 포기하기로 하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에 집중하기로 한다. 우리 몸은 급성 스트레스는 견뎌도 만성 스트레스는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나에게 그 미친 파콰드 영주는 만성 스트레스이다. 이 상황에서 나까지 쓰러지면 우리 가족에게는 재앙이다.


급여는 달콤하고 순간순간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뤄준다. 하지만 지금의 소득은 영원할 수 없으며, 그 농부가 기존의 기업형 경작을 포기하고 혁신적으로 다른 파이프 라인을 만들었듯이, 나 역시 지금과는 다른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시기는 신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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