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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Apr 29. 2024

용기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뚜벅뚜벅 걸어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웠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천장이 무너지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어서 꿈해몽을 뒤적거리다 지장기도를 드리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그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부터 절에 다녀왔다. 우리 집 뒷산의 절에 다녀오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나의 친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그들의 인생을 생각해 보니, 참 많이 외로웠겠구나라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남편 역시 간밤에 아버님이 나와서 자기를 괴롭히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의 불행했던 가정사는 아직도 그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어쩌면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흉터는 영원히 지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긴 Family SAGA 가족사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와 시댁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책에서 나오는 그 문제의 힐빌리 가족들은 내 시댁을 연상시킨다. 가난 그리고, 서로가 삶에 대해 내재된 엄청난 불만과 분노. 잘못된 표현방식과 술에 대한 의존, 이에 대한 반작용적 관계...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 물론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용서해야 한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님을 용서하고 스스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내 속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적어도 아버님은 그 오랜 세월 분명 책임감 있는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파친코의 이 구절이 떠오른다.

"요셉은 노아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노아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아에게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용서 없이 사는 삶이란 숨을 쉬고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부디 남편이 그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때때로 삶이 주는 무게에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제발 나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 혼을 낸다. 에너지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 내 삶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힐빌리 가족'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이번에는 내가 끊어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세상에 대한 안정감 그리고 반드시 결국에는 빛이 있다는 희망을 아이에게는 가르쳐야 한다. 


내 아들에게 힐빌리의 가족과 같은 대물림을 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힐빌리의 노래 속의 그 카리스마 있고 깡다구 있는 할매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억척스러운 자갈치 할매스러운 깡으로 용기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잘 견뎌내면 언젠가는 이 어두운 터널 끝에 희망이 있다는 사실(내가 결국에는 고난과 힘든 삶에서 극복해 냈다는 그 희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이에게 내 인생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언젠가 내가 아들을 떠날 때 적어도 내가 그에게 힐빌리 가족과 같은 운명의 악순환을 깬 그런 용기 있는 어른이 되어주었다는 그 사실을 뿌듯하게 기억하며 쒼나게 빠빠이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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