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인으로서 보는 지방 소멸과 삶의 질
요즘 나는 지방 소멸의 위기를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한국의 러스트 벨트.
인구는 줄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학교는 문을 닫는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반에 18명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수는 줄어들고,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조차 늘어나지 않는 현실. 우리 집 앞에 있던 유치원은 몇 년 전부터 문을 닫았고, 최근에는 집기마저 치워졌다. 이런 현상은 우리 동네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신도시 지역만 예외지만, 그마저도 인구 유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일자리의 불안정성
지방의 소멸을 체감하는 건 학교만이 아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생산하고 있는 아이템이 잘못되면 공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자동화는 갈수록 가속화되고, 정년은 연장되지만, 그만큼 젊은 인력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조선, 자동차, 철강 같은 지역 기반 산업들. 겉으로는 호황처럼 보이지만, 하청 업체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내 주위의 많은 젊은이들은 서울과 경기도로 떠나고 있다.
서울로 가면 편할까?
그렇다면, 나도 수도권으로 가야 할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문을 닫는다면, 결국 나도 서울이나 경기도로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서 삶이 나아질까? 수도권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삶은 너무 팍팍하다. 지옥철에서 밀리고, 2시가 넘는 출퇴근 길에서 지친다. 지하철이 없으면 버스를 타고, 버스가 없으면 걸어야 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서울로 간다 한들, 그곳에서 삶의 질이 정말 나아질까? 물론 수도권에는 더 많은 기회와 부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은 교육과 의료 시스템, 더 다양한 문화생활.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릴 시간과 체력이 남아 있을까? 집값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는 친구들은 문화생활은커녕 하루하루 버티는데 급급하다.
텍사스 같은 지방, 디트로이트 같은 지방.
나는 지방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도 지방에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이 미국의 텍사스 같은 곳이 되길 바란다. 뉴욕처럼 눈부신 도시도, 샌프란시스코처럼 첨단의 중심도 아니지만, 그래도 편안히 밥벌이하고,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디트로이트처럼 되지 않을까 두렵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돌고 도는 게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희망회로일까.
남아 있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나는 지금도 고민한다. 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이곳에 남고 싶다. 물론 연봉도, 문화적 수준도, 직장 내 시민의식도 지랄 같다. 꼰대 문화와 개저씨 문화도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 이 회사가 계속해서 나를 써준다면, 이 도시가 계속해서 생명을 유지해 준다면 나는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내가 짐을 싸고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 온다면, 그건 정말 이 지역이 완전히 죽어버린 날일 것이다.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은 날.
지방 소멸이 불러올 미래
서울, 수도권으로 집중이 계속된다면, 그곳의 집값은 계속해서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몰려드는 그 인구들을 다 감당할만한 SOC는 그리고 지방에서 아무리 인구가 빠진다 해도, 고정비처럼 들어가야 하는 SOC 운영비용이 있다. 그 비용은 과연 누가 내야 할까? 아마도 다 같이 분담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집값이 10억을 훌쩍 넘어 버리는데, 1억 준다고 해서 아기를 낳을까? 직장도 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20대가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개미지옥에 실려 피로에 절어 사는 직장인들이 마음 편히 육아를 하며 살 수 있을까?
출산율 0.78%조차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지방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조차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미 몰락해 버린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몰려든 인구들. 지금의 헬지옥은 그때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유행은 돌고 돈다. 디트로이트도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이 지방에도 기회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