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고요히 경청하자.
영어 공부를 하다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Prejudge - 예단, 속단하다.
그 딱 한단어였는데, 그 단어가 나를 마주하게 했다.
나는 친정 엄마와 대화할 때 자주 화를 낸다. 왜냐하면, 엄마는 항상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온갖 망상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가공의 시나리오, 근거 없는 두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속단적인 결론들..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히고, 짜증이 솟구친다. 엄마의 망상적인 판단을 그만하라고 소리치곤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 추석, 내가 화를 내고 돌아온 후에야 깨달았다. 요즘 내가 그랬다는 사실을.
지난 토요일, 아들과 함께 부산문화회관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열린 '서양미술사 기획 전시회가 열렸다.
우리는 기분 좋게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왔다. 그런데 출구 쪽에서 한 외국인 남성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혹시 전시장 찾고 계신가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지나가는 관광객이에요." 그 순간, 내 뇌회로가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그가 전시장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고, 그에게 이 전시회에 대해 간략히 이렇게 설명해 줘야지 하고 대략적인 준비까지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지나가는 관광객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들이 입에서 나왔다.
"어...저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아마도 당신은 서양미술사를 잘 아실 테니, 그 작품들이 다 익숙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나서 또 덧붙였다. "아! 강서구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도 지금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데요..."
나는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한 걸까? 왜 그렇게 횡설수설하며 그를 원하지 않는 관광지까지 안내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차 안에서 내내 헤드뱅을 했다.
아들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 괜찮아요. 그래도 엄마는 도와주려고 했잖아요." 그렇겠지. 도와주려는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나를 더 당황스럽게 한 건, 내가 대화를 하면서도 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화하면서 듣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내가 할 말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상대의 대답은 내가 예측한 대답이어야만 했다.
그 외의 대답은 나를 당황시키고, 예상과 다른 답변은 나를 허둥거리게 했다.
대화란 말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듣는 자의 것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지식을 뽐내고, 내가 준비한 말을 쏟아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만들어낸 시나리오 안에서만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그 외국인과의 짧은 대화에서도, 그리고 어쩌면 아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이미 예단하고 있었다. 상대가 말하지도 않은 말을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짓고, 내가 준비한 말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일단 멈추기로 했다. 내가 예단하지 않으려면, 일단 내 생각과 판단을 접어야 한다.
내가 이미 준비한 말이 있더라도, 멈추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어쩌면 그 순간, 내 에고는 조금은 잠잠해지고,
불필요한 당황과 횡설수설은 줄어들고,
대화 속에서 진짜 나와 상대방의 이야기가 오갈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대화의 본질이니까.
"속단하지 말고 들어라. 들어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