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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폭싹 속았수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금요일 저녁 치킨데이를 하면서 넷플레스에서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작 '폭싹 속았수다'의 1편을 보다 꺼이꺼이를 했다. 우리 아들은 '엄마 이건 드라마일 뿐이라며 나에게 울지 말라'라고 했지만, 나는 염혜란 배우의 연기를 보며 격한 감정이입을 했고, 그리고 미친듯이 오열했다. 모진 삶을 살았던 애순이 엄마, 첫째 남편 병수발에 사별하고, 재혼한 놈은 한량이고, 이제는 줄줄이 사탕 아이들을 키워내겠다고 차디찬 제주 바다에 몸을 던져 해녀질을 하다 폐병으로 죽게 되는 비극적 서사의 주인공. 내 삶과 그녀의 삶과는 한치의 공통점도 없지만 나는 엄혜란 배우의 절절한 모성애 연기에 내 눈물샘은 브레이크 없이 폭발했다. 박복했던 엄마 팔자 고스란히 물려받은 애순이를 보면서도 눈물을 훔쳤다.


'폭싹 속았수다'는 고생 가득하며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었던 그 시절에 우리들을 키워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가깝게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다. 인간이 성숙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부모를 '내 엄마', '내 아빠'의 시점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평생을 원망했던 엄마를 이제는 한 여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층 더 성숙한 자세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평생 나를 한 번도 제대로 안아주고 사랑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엄마가 가정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책임진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원망보다는 측음함과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내 죄책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자식은 부모가 못해준 것만 기억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해서 죄책감만 느낀다는 그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도 그렇게 부모를 원망했고, 지금 부모가 된 내가 자식에게 무엇인가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만 든다.


무엇이 되지 못해 공허함이 가득했고, 내 욕망처럼 삶이 전개되지 못해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과 분노, 적개심, 열등감 등 온갖 부정적 마음만 가득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어디 저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삶을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엄마가 우리 남매에게 그랬듯이, 나 역시 내 아들에게 '어른'이 되어주고 있구나를 깨닫는다.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세상의 풍파에 한번 기댈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러하기에 나는 지금 삶이 주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지만 내 안의 자부심 역시 생겼다. 내가 책임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좀 더 산뜻하게 일어나 아이 아침밥을 차려줬다. 비록 내 삶이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방향과는 달랐더라도, 나는 또 이렇게 우리 아이에게 꽤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점을 상기시켜 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를 끝까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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