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보이는 것들
일요일 아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항암 부작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겨야 한다며, 나에게 병원으로 와서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마감이 끝나 몸도 피곤한데,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는 내 수고스러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듯했다. 게다가 영상통화로 내가 짐을 대신 챙겨 가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엄마는 굳이 자신이 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게 괜히 서운했다.
아이를 데리고 부산의 끝과 끝을 40킬로미터 달려 엄마를 모시러 갔다. 그리고 다시 40킬로미터를 달려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집을 챙기고 내려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는 내려오지 않으셨다. 엄마가 급하게 나온 집을 치우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준비를 마치고 내려오셨다.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도 폭발했다.
친절하라.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난 엄마에게 친절하지 못할까? 제일 가여운 사람인데 말이다. 엄마는 만만한가? 엄마에게만 유독 내 인내심의 임계치가 낮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짜증부터 내고 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사과했다. "엄마, 미안해요." 그래, 내가 잘못했다. 누구보다 보호자의 심정을 잘 알면서도,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빠도 병실을 지키며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고, 엄마는 그 순간 나밖에 기댈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아들도 아빠에게는 내지 못하는 짜증을 나에게 낸다. 엄마가 만만한 거다. 카르마는 이렇게 되돌아오는 것일까. 나는 내 엄마에게 그러했고, 내 아들은 나에게 그러고 있다.
엄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나도 아들 앞에서 만만한 엄마로 남아주면서, 더 잘 안아줄게.
"우리는 부모의 아이였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깨닫는다."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