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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없는 인생이 정말 행복할까?

알고보니 내 결핍은 내 탓이 아니었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불행도 인생의 서사다.

오랜만에 쓰레드를 읽다가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이혼 가정에서 컸지만 똑똑했던 한 저자는 외국 유학까지 다녀오고, 지금은 외국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하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곱고 완벽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을 마치 무결점 인간처럼 동경한다. 그리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은 마치 하자 있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는 열등감과 결핍은 사실상 이 사회가 강요한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어쩌면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서사를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완벽해 보이는 가정, 완벽한 신체조건, 완벽한 외모, 완벽한 직업, 완벽한 인간관계...

그 완벽이라는 틀 안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아닐까.


소설가 양귀자의 [모순] 속에서도 이런 서사가 나온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 언니는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듯한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동생은 가난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완벽해 보였던 언니는 갑자기 자살을 해버린다. 양귀자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


그렇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완벽해 보이는 삶이 정말 행복을 보장할까? 아니, 어쩌면 그 완벽은 삶의 깊이와 밀도를 앗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미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광기다.


나는 이 문장이 양귀자의 [모순]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실수는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열등감과 결핍, 분노와 슬픔.

그것이 마치 나만 겪고 있는 특별한 불행처럼 느껴졌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그건 내 탓만은 아니었다. 휴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지금의 내 결핍, 지금의 내 분노와 슬픔은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이 불행이라는 서사는 내 인생의 부피를 분명히 늘려줄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언젠가 행복이라는 서사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서사를, 지금의 불완전한 나를 조금 더 소중하게 껴안아 보려 한다.


"불행도 인생의 서사다. 그리고 그 서사는 결국 우리 인생의 부피를 채운다."



괜찮아, 소예야


#결핍과성장, #불완전한삶, #완벽하지않아도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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