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my job.
어젯밤, 늦은 회의에 참석했다. 분기말 실적이 좋지 않다는 CFO의 이야기를 길게 듣는 동안, 그는 나와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하는 동료의 노력을 칭찬했다. 그 순간, 나는 묘한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꼈다. 그녀는 아시아 전체 P&L을 관리하는 Analyst다. 나는 한 공장에서 제조원가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상하이의 멋진 빌딩 안에서 내가 만든 자료와 다른 세일즈 팀의 자료를 바탕으로 pnl을 작성한다. 그 차이가 내 잘못은 아닌데, 왜 나는 작아지는 걸까.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크기
중국의 치킨게임, 세계 경제의 불황, 공급망 재편의 흐름 속에서 물량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내가 발표하는 실적이 작다고 해서 내가 작은 사람은 아니지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나는 회사의 누구도 아니고, 회사가 나도 아닌데, 왜 자꾸 내 자존감은 '내가 하는 일'에 결부시키는 걸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심리학적으로 직업과 자아를 동일시하면 번아웃이 온다고 한다. 스스로 수도 없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아니다라고 되뇌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나의 가치를 얹고 있다. 성과, 평가, 연봉, 직위. 그런 외부의 기준이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왜 자꾸 그 기준에 휘청이는 걸까?
불안과 자격지심, 그리고 내 안의 아이
이 감정은 어쩌면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충분하지 않다." 그 믿음이 뿌리처럼 박혀 있어 누가 칭찬을 받으면 나는 스스로 존재가 위협당한 듯 움츠러든다.
어제 회의 중, 나는 내 안의 작은 아이와 마주쳤다. 그 아이는 언제나 '더 잘해야 한다'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억누르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감정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1. 불안을 인정하다.
불완전한 내가 느끼는 감정들 - 질투, 자격지심, 서운함 - 모두 인간의 것이다. 느끼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그저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회복은 시작된다.
2. 나만의 기준을 만든다.
직위도 연봉도 아닌, 나 스스로 정한 태도와 행동이 나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어제보다 부지런한 내가 되겠다'는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작은 실천을 쌓아간다.
ex) 아침 조깅하기, 아침밥 챙겨 먹기, 아이 숙제 봐주기
그렇게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작은 성취가 자존감을 쌓는다.
3. 자연 속에서 감각을 회복한다.
마음이 번잡할 때, 햇살을 만지고, 풀냄새를 맡는다. 바람이 스치고, 새소리가 들릴때 나는 다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자연은 번아웃을 치유하는 강력한 치료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자연 속으로 향한다. 왜 자연은 우리를 회복시키는 걸까? 자연은 아름다움, 진실함, 선함으로 이루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 진실한 것, 선한 것 속에서 회복되고 치유된다.
그것이 바로 감각이 깨어나는 방식이고 살아 있다는 것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라고 내 세포가, 내 감각이 말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쯤엔 나는 회사에서 지워졌던 나의 감각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