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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렬한 리얼리스트보다는 로맨티스트로

나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 되어간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You are not what happened to you but what you chose to become.

언젠가 이 말을 들었다. 칼 융의 명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지금 2차 항암 주사 후 병원에 입원 중이다. 나는 오빠와 하루하루 부모님 상태를 공유하고 있다. 2인실인데 자꾸 옆자리가 바뀌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빠는 엄마 아빠 사이를 중재하는 게 피곤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별자리며 관상 같은 것까지 챗GPT에 물어보며 웃고 있다. 웃음은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남은 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실상, 우리 남매 모두 인생의 난제를 안고 있다.

오빠는 퇴사를 앞두고 있고, 사춘기 딸과 씨름 중이다.

나는 아픈 남편과, 회사에서의 끊임없는 에너지 소진, 그리고 어린 아들을 안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우리 남매는 통화를 하며 웃는다.

삶은 무겁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준다.


어제는 한 웹툰 작가의 이야기를 보았다.

치매 어머니와 파킨슨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돌보며 그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만화로 표현해 내는 사람. 그녀의 웃음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고 단단했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모든 불운을 내가 짊어진 듯 살아갔다. 삶은 왜 나에게만 이리도 가혹한가, 그렇게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칼 융의 말처럼, 나는 더 이상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이후 내가 선택한 태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돌부리에 넘어지고도 바지를 털고 다시 걷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나는 오랫동안 후자였다. 하지만 이제, 바지를 툭툭 털고 다시 걸으려 한다. 어떤 기분과 태도로 이 삶이라는 여정을 이어가느냐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유쾌하게 살기로.

웅크린 리얼리스트보다는, 꿈을 믿는 로맨티시스트로.


박경리 선생은 [약이 되는 세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는 결론이 없다. 미지로써 한 인생이 끝나는 그날, 즉 죽는 그날에야 비로소 결론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건 행복하건 사람은 다 자기의 세월을 살아야 하며, 남의 세월을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때론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낭만과 웃음을 선택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조금씩, 나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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