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힘을 주는 행위 1
좋은 향기
나는 언젠가부터 향수가 좋아졌다.
아가씨때는 잘 쓰지 않던 향수를, 중년이 된 지금은 매일 찾게 된다. 가끔씩 내 몸에서 나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다. 남편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의 축 처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그의 생기 없는 거무튀튀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 가슴은 다시 무거운 돌덩이로 짓눌리는 듯했다. 또 무너져버렸다. 매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기분이다. 퇴근길, 발길은 절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은 한가롭고 아름다운데, 내 마음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웅전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이 코끝을 스쳤다. 대웅전은 내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찾아오는 안식처였다. 그곳에서 108배를 하며 마음을 내려놓곤 했다. 커다란 불상은 촛불과 조명의 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고, 그 앞에 놓인 하얀 연등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듯 흔들리고 있었다. 향을 피우자, 하얀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라 천천히 공기를 타고 흩어졌다. 그 냄새는 매캐하기보다 부드럽고 따스했다.
108배를 시작하자 처음에는 무릎이 나무바닥에 닿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싶었는데, 점점 내 몸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동작에 몰입된 느낌이었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내 안의 뜨거운 울음도 조금씩 식어갔다. 10개, 20개, 30개... 어느 순간 눈물 대신 땀이 흘러내리고, 절의 고요함 속에서 내 호흡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절을 마치고 방석에 앉으니 향 연기가 내 땀 냄새와 뒤섞여 공기 속에서 춤을 췄다. 그 순간 오직 내 안의 고요만이 남았다. 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마음은 고요 속에 녹아들며 한층 가벼워졌다. 솟구쳐 오르던 슬픔이 차츰 가라앉아, 마침내 고요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와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현실이 시작된다. 아이에게는 상냥한 엄마이고 싶지만, 불안과 피로는 자꾸 거친 말로 튀어나온다. 밤이 되면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끝나지 않을 두려움 속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침, 억지로 웃으며 태양을 맞는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향수를 뿌린다. 꽃향이 내게 용기를 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소예야, 넌 잘 살고 있어. 이 향 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히 하루를 잘 살아 내자. 너에게 참 좋은 향이 난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야지.
오늘도 나는 이 작은 향기를 따라 하루를 살아간다. 은은한 꽃향처럼, 나의 하루도 조금은 부드럽게 피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