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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나에게 힘을 주는 행위 2

by 따뜻한 불꽃 소예

주말,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시내에 나갔다. 아이는 아이스링크장에서 엉거주춤했지만 금세 적응해 즐겁게 스케이트를 탔다. 웃음 가득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나도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멀리 밀려나간 듯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걷다 보니, 내가 시내에 나오면 꼭 들르는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독가는 아니다. 하지만 서점에 들었는 순간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뛴다. 책 향기, 정돈된 서가, 그리고 수많은 책들... 서가 사이를 걷다 보면, 세상 모든 이야기가 이곳에 잠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언젠가 나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이 서가 선반 위에 내 책을 꽂을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게 서점의 선반 위에 놓인 책들을 천천히 훑다가, 이어령 선생님의 책 '이어령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마치 홀린 듯 책을 펼쳤고, 단 몇 줄만 읽었는데도 정신이 멍해졌다. 아,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열매

뜨거운 햇빛과 소낙비 속에서 조용히 열매가 자란다.

그리고 천둥이 칠 때마다 단맛이 스며든다. 사람의 삶도.

그 가열한 고난 속에서 그렇게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길지 않은 문장 속에서 생각의 깊이와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 그래서 그가 '문호'였구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어릴 적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였을지 모른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지적인 이미지, 안정감. 하지만 정작 그땐 제대로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블로그에 가벼운 서평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닥쳤고, 나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라도 내 이야기를 쏟아낼 공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에게는 '대나무숲'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삶의 고난을 이해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내 감정, 나의 상황, 가족의 마음,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려내는 풍경들까지.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 안의 오해, 미움, 원망에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이해했고, 상대를 보듬으며,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나는 나를 좀 더 보듬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글은 나를 돌보는 일

이제 글쓰기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의식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등불이자, 나를 치유하는 '행위'자체가 되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말했다.

"말을 문자로 옮긴다는 것은 혼돈의 어둠에서 질서의 빛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시간에 대항하는 용기이며, 그 장소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게 그대로 닿는다.


나는 지금, 혼돈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둡고 지친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감정과 생각을 문자로 옮기며,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세계로 걸어간다. 그 빛은 아직 희미하지만, 노트북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마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마음으로 나를 채운다. 그것이 있기에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내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멈추게 하고, 짧은 문장 하나로 살아가는 힘을 건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이렇게 계속 끄적이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닿는 그 '한 문장'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릴케의 말처럼, "You must give birth to your images. They are the future waiting to be born." 글쓰기는 나의 미래이고, 내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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